2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노숙인들과 시민들에게 밥버거와 빵, 성경책, 파스를 나눠주는 행사에 참여한 한 교회 소속 교인이 노숙인을 안고 기도해주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울역 광장에 텐트촌이 생겼다. 겨울철 추위와 코로나19 감염 위기로 이중고를 겪는 노숙인들의 안식처가 되라고 인근 교회에서 마련한 것이다.
29일 서울 중구 경의중앙선 서울역 1번 출구 ‘문화역 서울284(옛 서울역사)’와 ‘서울시 다시서기 서울역희망지원센터’ 건물 앞을 찾아가니, 양 옆으로 늘어선 텐트 20개를 볼 수 있었다. 경의중앙선 서울역 2번 출구와, 1호선 서울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텐트까지 합치면 약 35개에 달한다. 형광 주황빛 텐트에는 텐트 주인의 이름이 검은 펜으로 적혔다. 인근 용산역 구름다리 아래에 노숙인들이 모여 사는 텐트촌이 형성됐고, 외환위기 직후 서울역 인근 교회 공터에 텐트촌이 잠시 만들어진 적은 있었지만 서울역 광장에 텐트가 설치된 것은 처음이다.
텐트는 지난 11월 인근 교회에서 지원했다. 공공이 해야 할 일을 민간이 대신했다.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며 서울역 광장 노숙인들 최소 3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달 30일 경증 확진자의 재택 치료 방침을 발표했고, 집이 없는 노숙인 확진자는 사실상 방치됐다. 서울역 광장에서 지내던 한 노숙인은 지난달 30일 코로나19 확진이 됐지만 병상 대기 순서에서 밀려 생활치료센터나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다. 그는 결국 거리에서 ‘격리 해제’를 맞았다.
주말까지 추위가 이어진다고 알려진 가운데 2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 노숙인 동사를 막기 위해 인근 교회에서 지원한 텐트 총 35개가 설치돼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텐트에서 지내던 노숙인들은 ‘목사님의 도움’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숙인 쉼터도 있지만 강화된 방역기준 탓에 출입이 까다로워지자 일부 노숙인들은 텐트촌을 반긴다. 용산구 남영역에서 노숙하다가 이곳으로 옮겨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여성 노숙인 최아무개(65)씨는 “경찰들이 교회에서 준 텐트라며 여기 있으라고 해서 지내고 있다”며 “평소에 숨이 잘 차고 걸어 다니기 힘들었는데 여기서 지내니 몸이 많이 나아졌다. 계속 여기서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텐트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배아무개(66)씨는 “아는 동생이 지내는 텐트인데, 무료급식 때문에 서울역에 오는 날에는 낮 동안에 잠시 빌려서 이곳에서 지낸다”며 “짐도 놓을 수 있고 여기 안에 있으니 밖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배씨가 있는 텐트 안에는 담요와 옷가지 등 각종 짐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당장 사생활이 보장되는 등 텐트가 긍정적인 효과를 낳고 있지만 겨울이 지나면 철거 가능성도 있어서 그 뒤가 걱정된다”며 “임시주거지원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말했다.
노숙인들은 여전히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한 처지다. 백신 접종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불안정한 거주가 집단감염의 고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씨는 “나를 포함해 여기는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잘 없는 것으로 안다”며 “코로나19에 걸려 아파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9일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텐트에서 지내고 있는 배아무개(66)씨.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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