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서경찰서가 2018년 11월12일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며 공개한 자매 중 한사람의 시험지 깨알 메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교무부장 아버지로부터 문제 정답을 미리 받아보고 시험을 치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숙명여고 자매가 항소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자매의 급격한 성적 상승 및 ‘깨알 메모’ 등이 아버지로부터 정답을 받아보고 시험에 임한 결과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3부(부장판사 이관형 최병률 원정숙)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현아무개(21) 자매에게 21일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은 이들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40시간을 명령했는데, 항소심에서는 형이 다소 줄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자매가 유출된 정답을 바탕으로 서로 공모했다는 공범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지만 그 밖의 혐의 대부분은 1심과 유사하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버지 현아무개 전 숙명여고 교무부장의 정답 유출 행위가 있었고, 자매가 이를 받아 암기한 뒤 시험을 치렀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내신 성적 중위권~중상위권이었던 자매가 각 계열에서 1등을 차지한 점을 들었다. 이들 자매의 2017년 1학년 1학기 종합석차는 각각 전교 121등, 59등이었는데, 2018년 2학년 1학기에는 인문계·자연계에서 나란히 1등에 올랐다. 자매는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한 과목, 2017년 1학년 2학기 중간·기말고사 전과목, 2018년 2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 전 과목 등 총 5차례에 걸쳐 유출된 정답을 보고 시험을 치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부는 “2017년 1학년 2학기를 기점으로 정기고사 성적이 급격히 상승해 2018년 2학년 1학기에 각각 인문계·자연계에서 전체 1등을 차지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전국단위 모의고사 성적이나 학원 레벨테스트 결과는 정기고사 성적에 크게 미치지 못해 전체 1등의 실력을 실제로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자매의 모의고사 국어·수학 점수가 다른 내신 상위권 학생과 달리 상위 33%에서 벗어났으며 수학 학원 레벨테스트에선 평균점수보다 낮은 점수를 얻은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었다.
일부 시험에서 문제지에 ‘깨알 정답’을 적거나 답안지에 정정 전 정답을 기재했다는 점도 재판부는 유죄의 근거로 판단했다. 자매 쪽은 깨알 정답에 대해선 “시험이 모두 끝나면 채점하려고 반장이 불러준 답을 적은 것”이라고 해명하고 정정 후 정답을 적어내 문제를 맞힌 경우도 있다는 취지로 항변했지만, 재판부의 유죄 판단을 뒤집지는 못했다. 재판부는 △시험 당일 아버지에게 ‘둘 다 백점’, ‘하나 틀려 96.7점’ 같은 문자를 보내는 등 바로 채점한 것으로 보이고 △깨알 정답에 정정 전 정답이 기재돼 있으며 △동생이 2018년 1학년 1학기 화학 서술형 과목에서 전교생 중 유일하게 정정 전 정답인 ‘10:11’을 기재한 점 △수학 문제에선 풀이과정이 잘못됐음에도 정답을 맞힌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인해 정상적 방법으로 성적 올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숙명여고 같은 학년 학생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했음은 물론, 공교육 전체에 대한 사회의 일반 신뢰가 훼손됐다. 피고인들은 당심까지 여전히 ‘정기고사 성적은 실력으로 이룬 정당한 성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범행 극구 부인하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면서도 자매가 숙명여고에서 퇴학 처분됐고 형사 재판과 별개로 국민적 지탄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는 자매 중 동생만 출석해 선고를 들었다. 선고가 끝난 뒤 방청석에 앉은 아버지 현씨는 재판부를 향해 “상상으로 (유죄 판결을) 할 수 있나. 양심을 지켜야죠”라고 외쳐 법정 경위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현씨는 2020년 3월 대법원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 확정판결을 받고 형기를 마쳤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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