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선에서 일하다 골절 사고를 당한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인 선원과 동일한 임금 기준으로 산업재해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한국인 선원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이주어선원은 임금뿐만 아니라 산재보상에서도 차별을 받아왔는데, 이에 대해 법원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2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김연주 판사는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어선에서 일해온 ㄱ(37)씨가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를 상대로 ‘한국인 선원의 최저임금고시를 기준으로 장해급여 등을 지급해 달라’는 취지로 낸 소송에서 지난 19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ㄱ씨의 경우에도 (한국인) 어선원 재해보상 때 적용되는 임금을 기준으로 상병급여 및 장해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ㄱ씨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20t 이상 연근해 어선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 ㄱ씨는 2018년 3월부터 한국의 한 업체에서 35t짜리 선박에서 선원으로 일했다. 배를 타고 한 번에 며칠씩 바다로 나가 오징어 등을 잡는 일이었다. ㄱ씨는 그해 12월 그물을 끌어올리다가 오른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고, 손가락과 손등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는 분쇄골절 진단을 받아 2020년 4월까지 일손을 놓고 치료를 해야 했다. 산업재해 개념조차 몰랐던 ㄱ씨는 경주이주노동자센터의 도움을 받아 산재신청을 했고, 수산업협동조합으로부터 상병급여 240여만원과 장해급여 1300여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ㄱ씨에게 주어진 상병급여·장해급여는 한국인 선원에 견주면 턱없이 부족했다. 상병수당 등은 ‘선원 최저임금’에 따라 결정되는데, 외국인 선원의 최저임금은 한국인 선원의 최저임금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는 한국인 선원의 임금과 외국인 선원의 임금을 정하는 주체가 다른 데서 기인한다. 한국인 선원의 최저임금은 해양수산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선원 최저임금 고시’에 따라 결정된다. 해수부는 바다 위에서 장시간 근무하는 어선원의 특성을 고려해 육상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고시하고 있다. 육상노동자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보다 40만~50만원가량 많은 수준이다. 육상노동자가 받는 최저임금은 한국인과 이주노동자의 차이가 없다.
반면 이주어선원의 최저임금은 해마다 한국인 노사의 손에 결정돼왔다. 해수부가 이들의 최저임금을 사용자단체(수산업협동조합)와 한국인 어선원으로 꾸려진 노조(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사이 단체협약으로 정하도록 위임한 탓이다. ㄱ씨가 받은 상병급여·장해급여는 2019년과 2020년 이주어선원의 최저시급 7800원, 8240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액수로, 이 시급은 같은 기간 육상노동자의 최저시급 8350원, 859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이러한 임금 결정방식을 두고 오세용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해수부의 무책임과 더불어 선주와 노조의 담합으로 이뤄진 결과”라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이주어선원의 산재 보상금을 정할 때도 낮은 임금 테이블을 기준으로 정하는 것은 “외국인 선원에게 불이익한 해석”이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해수부가 이주어선원 최저임금을 노사에 위임한 데 대해서도 재판부는 “최저임금이란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의 최저선을 정한 것이다. 위임의 한계를 일탈해 외국인 선원에 대해서만 (노사) 단체협약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한 것을 허용할 수는 없고, 현재 대한민국에 적용되는 관련 국제규범 및 해양업 규모, 외국인 선원 종사자 비중 등에 비춰보면 선원 최저임금 등 관련 규정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ㄱ씨의 법률대리인으로 이 사건 소송을 수행한 박영아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숙련도 따라 임금의 차등은 있을 수 있지만, 최저임금에 차별을 두는 것은 문제다. 한국 법 체계상 ‘법정기준은 누구든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해수부 장관이 (이주어선원 임금을) 사인 간 합의로 정하게 위임한 것은 이런 법체계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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