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무지 대물림 악순환 끊고 싶다”
초등 2년 뒤 상경해 평화시장 노동 40년…초·중·고 검정고시 3년만에 성공회대 합격
초등 2년 뒤 상경해 평화시장 노동 40년…초·중·고 검정고시 3년만에 성공회대 합격
청계천피복노동조합(청피)의 언니 신순애(53·사진)씨가 새학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2년을 다닌 뒤 44년만이다. 2003년 5월 초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시작으로 이듬해 봄과 가을 잇따라 중등, 고등학력인정 검정고시를 합격한 후 ‘드디어’ 대학문에 골인한 것이다. 청피 출신으로는 고 전태일의 여동생으로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순옥씨에 이어 두번째 4년제 대학생이 되는 셈이다.
굶기를 밥먹듯 하던 어린 시절, 전북 남원 고향을 등지고 부모를 따라 1964년 상경한 신씨에게 학교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었다. 12살 소녀 순애는 청계천 아동복공장에서 바느질을 시작했다. 다락이 딸린 여섯 평 남짓 공간이 그가 청춘을 바친 평생직장이다. 93년 그만둘 때까지 40년 가까운 시절을 평화시장에서 보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지요. 그래서 공부한 거고, 나처럼 어려운 형편 탓에 꿈을 꺾는 청소년들에게 한가닥 희망을 줄 수 있길 바래요"
신씨는 ‘대물림’이란 말이 그렇게 미울 수 없단다. “가난의 대물림, 무지의 대물림, 그런 악순환을 끊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대학에서 찾아보고 싶어요. 사회과학부에 입학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고요.” 그는 진작부터 청소년 문제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왔다. 8월이면 내일청소년여성센터에서 청소년 문제상담을 한 지 꼭 10년이 된다. 신씨는 지난 14일 봄비가 오락가락 하던 오후 모처럼 시내 나들이에 나서 청계천 6가 전태일 흉상을 찾았다. 동화상가 입구 구름다리를 바라보다 잠시 감회에 젖는가 싶더니 말문이 터졌다.
“저기서 전태일 선배님이 분신했어요. 살아있을 때는 몰랐지만, 그 덕택에 내 인생도 많이 변했습니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야 훨씬 살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 말예요. 요즘도 선배 분신일인 11월13일과 12월 송년회 때 두차례 청피 출신들이 모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노동자들이 흘린 땀 덕분에 나라가 잘 살게 됐다면서 막상 은행에서 몇 백만원 빌리려 해도 그렇게 까다로울 수가 없어요. 경호학과 나와 경찰하는 큰 딸은 천만원도 쉽게 빌리던데…” “사실 작년에도 성공회대에 엔지오 특별전형에 응시했는데, 유명한 학생운동 출신 어머니한테 양보했어요. 노동자가 제대로 대우받는 건 아무래도 더 시간이 걸려야 하나봐요.”
신씨는 자신의 별명이 ‘까망 바바리’라고 했다. 한벌 사면 7~8년은 너끈히 입는단다. 이날도 그는 검정색 반코트 차림이었다. 가벼워 활동하기 편하고 때가 타도 티가 안나 입기 딱 좋다는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 두 딸보다 어린 학우들과 지낼 생각하니 셀레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평화시장 노동경험이 뭔가 보탬이 됐으면 해요.” 신씨는 20일 오티(오리엔테이션)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고 했다.
글 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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