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법사 논쟁’이 소환한 1984년 전국민 초능력 따라하기

등록 2022-02-05 09:17수정 2023-09-01 09:15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유리 겔러

가짜 초능력에 학자들도 깜박
한국서도 숟가락 구부리기 열풍
현대적 미신에 속아넘어간 시절
최근 정치권 ‘법사 논란’ 겹쳐져
이스라엘 퇴역군인 출신 마술사 유리 겔러는 초능력자로 소문나면서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유리 겔러가 1984년 방한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스라엘 퇴역군인 출신 마술사 유리 겔러는 초능력자로 소문나면서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유리 겔러가 1984년 방한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뉴스레터 공짜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숟가락을 구부렸는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였다. 동네는 공영 <한국방송>(KBS)의 특집 생방송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흥분의 도가니였다. 나는 경상남도 마산의 작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의 삶은 아직 주택과 아파트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한 채였다. 아파트 화단에는 누군가 줄에 묶어 키우는 암탉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름이면 베란다에 대나무로 된 발을 내걸었다. 밤이면 발 사이로 사람들이 수박을 먹고 있는 광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봤다. 좋은 시절이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사람은 원래 자신의 유년기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다만 그 시절이 지금보다 ‘순진한’ 시절이었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초능력 흉내, 전국에서 숟가락 구부리기

1984년은 ‘순진한 시절’에 딱 들어맞는 해였다.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이 북한의 5배를 넘어섰다. 애플이 개인용컴퓨터(PC) ‘매킨토시 128K’를 발매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며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한 서구에 항의하며 공산권이 모두 불참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열렸다. 한국방송 <연예가중계>가 처음으로 방영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을 방문했다. 역사적인 컴퓨터 게임 ‘테트리스’가 출시됐다.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됐다. 롯데 자이언츠가 창단 2년 만에 첫 우승을 했다. 사천만이 기다리는 가운데 유리 겔러가 방한했다. 유리 겔러? 그게 누구냐고?

유리 겔러는 당대의 초능력자였다. 그가 주장하기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유리 겔러는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 군에 입대했다가 부상으로 퇴역한 그는 이런저런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마술쇼를 선보였고, 그게 비즈니스가 좀 되자 스스로를 초능력자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유리 겔러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의 텔레비전에 출연해 숟가락을 손가락 하나로 구부리는 초능력을 선보이며 점점 유명해졌다. 이런 활약을 지켜보던 미국의 초심리학자(라고는 하지만 초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은 호사가) 안드리야 푸하리치는 그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몇가지 테스트를 진행한 뒤 푸하리치는 유리 겔러가 초능력자가 맞다고 선언했다. 물론 우리는 푸하리치가 1974년에 펴낸 책에서 유리 겔러가 쇠를 금으로 만들었다거나 개가 벽을 통과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 사람이라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때는 1970년대였다. 인류가 좀 더 순진하던 시대였다. 푸하리치의 초능력자 마케팅은 통했다. 유리 겔러는 미국을 순회하며 숟가락 구부리는 마술, 아니 초능력을 전시했다. 엄청난 수익이 남는 비즈니스였다. 이 비즈니스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은 ‘인증’이 필요했다. 흥미진진하게도 정부와 과학이 비즈니스에 말려들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73년 민간 회사를 통해 유리 겔러를 테스트한 뒤 “초지각능력을 믿을 만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선보였다”고 결론 내렸다. 미국 국방정보국 의뢰로 이루어진 스탠퍼드대 연구소의 실험도 비슷했다. 이 실험 논문은 “유리 겔러가 추후 더 심각한 연구를 계속할 필요가 충분히 있을 정도의 능력을 보였다”는 결론과 함께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그 시절을 겪지 못한 2022년의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냐며 경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도 몇몇 과학자들과 거짓 초자연현상 타파자들이 유리 겔러의 능력이 싸구려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외침은 유리 겔러의 명성에 큰 흠을 내지 못했다. 어쩌겠는가. 정부와 대학이 초자연현상을 진지하게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믿기를 바랐다. 믿고 싶어 했다. 한번 불붙은 명성은 쉽게 사그라들지도 않았다. 유리 겔러는 이미 1980년대 초 전세계가 사랑하는 공인된 초능력자이자 첫번째 백만장자 초능력자가 됐다.

‘제2의 유리 겔라’로 불리며 초능력이 있다고 알려졌던 이스라엘 소년 리틀 오렌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생존자 수색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제2의 유리 겔라’로 불리며 초능력이 있다고 알려졌던 이스라엘 소년 리틀 오렌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생존자 수색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적 미신이었던 ‘초능력 쇼’

한국방송의 특집 프로 <세기의 경이 초능력 유리 겔러쇼>가 생방송으로 방영되던 1984년 9월23일을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미 광고를 본 사람들이 집집마다 숟가락이나 시계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티브이 화면에 나타난 유리 겔러가 전국 방방곡곡에 텔레파시를 보내는 순간 모두가 손가락에 힘을 주고 숟가락을 눌렀다. 나도 눌렀다. 간절히 믿으면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런 법은 없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숟가락은 구부러지지도 부러지지도 않았다. 프로그램이 끝나자 아이들이 아파트 1층으로 내려왔다. 그중 하나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구부러진 숟가락을 내밀었다. 유리 겔러가 신호를 보내는 순간 자기 아빠가 구부렸다고 했다.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다음날 학교로 갔더니 더 많은 간증과 증거가 쏟아졌다. 구부러진 숟가락이 쏟아졌다. 나는 굴복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부린 것이라면 구부러진 것이 맞다. 맞아야만 했다. 그날 저녁 9시 뉴스에서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숟가락을 구부린 사람들의 증언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건 아주 정확한 기억은 아니니 넘어가자. 어쨌거나 중요한 건 1984년의 한국이란 공영방송의 특집 생방송에 이스라엘 출신의 초능력자가 나와서 전 국민을 상대로 쇼케이스를 하는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그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비과학을 엔터테인먼트로서 받아들였다.

내가 유리 겔러를 다시 보게 된 건 2000년대 초반의 영국에서였다. 티브이를 틀었더니 새로 시작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유리 겔러가 나왔다. 한물간 연예인들을 정글에 모아놓고 벌레를 산 채로 먹인다거나 하는 가학적인 게임을 통해 하나씩 제거하고 최종 우승자를 뽑는 쇼였다. 거기서 유리 겔러는 이미 자신의 초능력이 사기라는 것을 자신의 입으로 고백한 지 이미 십여년이 지난 ‘마술사’로 출연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한심하면서도 반가웠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누구도 유리 겔러가 진짜 초능력자라고 믿지 않았다. 인류가 조금 덜 지성적이었던 시대가 낳은 씁쓸한 유물처럼 그를 받아들였다. 그는 현대의 미신 그 자체였다. 초능력자 생방 프로그램을 만들던 시대와 셀레브리티 학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대의 지성 차이가 뭐 얼마나 되겠냐고 묻고 싶은 분도 계시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집단 지성이 점점 진화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적어도 가뭄이라고 국가가 기우제를 지내던 순진한 시절로부터는 정말이지 긴 걸음을 걸어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미신은 어디까지나 미신으로

나는 사실 이 글을 요즘 지나치게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스승과 도사와 법사들의 이야기를 한탄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 내 이름은 경상남도 마산의 한 작명소에서 어떤 도사님이 지으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점성술 앱을 열심히 활용하고 있다(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염소자리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가 “저는 혈액형이 비(B)형입니다”라고 말하면 속으로 ‘약간 제멋대로인 타입이겠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나는 아이엔에프피(INFP)라서 그런 타입을 만나면 좀 힘들어지…. 아, 맞다. 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BTI) 테스트는 내가 새롭게 시달리게 된 새로운 유형의 미신이다. 작년 말 친구들과 수원까지 사주를 보러 간 이야기는 너무 자세하게 여기 고백하긴 좀 그렇다. 아무래도 나는 솔직하게 프라이버시를 전시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아이엔에프피니까 말이다.

결국 그렇다. 유리 겔러의 시대는 갔지만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여전히 현대적 미신을 슬그머니 믿는 구식의 케이(K) 한국인이 살고 있다. 수원의 법사 선생님이 유튜브 같은 걸 해보라고 한 조언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금을 몸에 지녀야 돈이 들어온다는 말을 믿고 맞춘 육중한 금목걸이도 항상 차고 있다. 1984년 9월23일 자신이 정말로 유리 겔러의 텔레파시를 받아 숟가락을 구부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여전히 세상에는 존재할 것이다. 아마도 그 숟가락은 너무 약한 스테인으로 되어 있어 누가 힘을 줘도 구부러졌겠지만 당신의 믿음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당신도 정치인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공개적으로는 밝히지 않으면서 종종 찾는 그 법사님들은 그저 우리 각자의 인생만 망칠 뿐이다.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