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기도 수원시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쿠팡 동탄물류센터 무기계약직 직원 ㄴ(53)씨의 빈소. ㄴ씨는 지난해 12월24일 물류센터에서 근무도중 쓰러져 의식을 잃은 뒤 지난 11일 뇌출혈로 숨졌다. 장예지 기자
지난해 성탄절 전날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일하던 50대 여성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쓰러진 뒤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 11일 끝내 숨졌다. 응급 상황에서 현장관리자는 119신고보다 사내 보고를 먼저 했다. 119신고는 20분 뒤에야 이뤄졌다.
1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 화성시 동탄물류센터에서 전산 업무를 하던 ㄴ(53)씨는 지난해 12월24일 오전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져 뇌출혈 진단을 받은 ㄴ씨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 11일 오전 숨졌다. ㄴ씨 언니는 “생전에 육체적·심리적으로 업무 스트레스를 많아 받았다. ‘죽어서 여길(물류센터를) 나갈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유족은 ㄴ씨에게 뇌혈관 질환 등 지병은 없었다고 했다.
유족은 회사의 늑장대응 탓에 응급조처가 늦어졌다고 했다. 소방과 유족, 동료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쓰러져 있던 ㄴ씨는 오전 11시25분께 동료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현장관리자가 ㄴ씨 상태를 살폈지만 119신고는 20분이 지난 오전 11시45분께 이뤄졌다고 한다. 현장관리자가 119신고가 아닌 회사 보건팀에 먼저 문의했고, 그 이후에야 신고 및 응급조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동탄센터 현장 직원들은 휴대전화 소지가 금지된다. 당시 현장에 있던 ㄴ씨 동료는 “휴대전화를 가진 매니저(관리자급)가 보건팀에 전화해 증상을 알렸다. 보건팀이 현장에 오면 신고를 하려는 것 같길래 답답한 마음이 들어 빨리 신고해 달라고 얘기한 뒤에야 신고가 이뤄졌다”고 했다. 미약한 의식 상태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밀며 119 신고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작업 현장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비상전화가 있다. 다만 근처에 있던 현장관리자가 바로 회사에 보고하면서 비상전화 신고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1차 응급조처는 보건팀이 맡았다. ㄴ씨에게 핫팩을 붙이고 혈당·혈압체크 등을 했다. 소방 기록으로는 119 신고 28분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도착했다. ㄴ씨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느라 시간은 더 지체됐다. ㄴ씨는 발견되고 1시간20여분 지난 낮 12시49분께 병원에 도착했다. 이에 쿠팡 쪽은 “ㄴ씨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현장관리자에게 두통을 호소했으며 관리자가 13분 만에 119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동탄센터에서는 지난해 1월 ㄴ씨와 비슷한 50대 여성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있었지만 노동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난방 시설이 없어 겨울철이면 핫팩과 방한복에 의지해야 한다. ㄴ씨가 쓰러진 날은 바깥 최저기온이 영하 6도였다. ‘서포터’ 직급으로 현장 전반을 살펴야 했던 ㄴ씨는 업무강도가 높은 편이었다고 한다. 다른 동료는 “난방이 아예 안 되기 때문에 택배가 쌓인 도크 쪽은 더 춥다. 일반 사원은 한 구역에서만 일하지만 서포터는 층을 오가며 이곳저곳 이동하는 경우도 많다. 추운 곳을 오가며 일하고 사람이 부족하면 대신 업무도 해야 해서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생명을 잃은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곁의 동료는 응급구조 요청을 할 수단이 없고 관리자마저 절차를 밟아야만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다. 기업이 노동자 생명보다 통제를 우선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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