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새벽 12시30분께 인천국제공항에서 런던행 비행기 탑승 준비를 하던 네덜란드 항공(KLM) 승객들의 모습. 사진 조아무개씨 제공
27일 0시55분 인천공항에서 영국 런던행 비행기 탑승 수속까지 마친 조아무개(35)씨와 동료 7명은 갑작스레 결항 통보를 받았다. 비행기 이륙 20여분 전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여파로 조씨가 표를 끊은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이 러시아 영공을 지나는 항공편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 제재 조치 일환으로 러시아 항공기의 자국 영공 비행 금지를, 러시아 역시 해당 국가에 대한 동일한 맞불 조처를 한 상태다. KLM은 러시아 모스크바 등으로 향하던 여객기를 회항시키는 한편, 러시아 상공을 통과해 네덜란드를 경유한 뒤 런던으로 향하는 항공편도 취소했다. 결국 조씨를 포함한 150명가량 승객들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공항에서 3시간을 머무른 뒤 호텔을 안내 받았고, 이날 오후가 돼서야 다른 국내 항공편을 이용해 싱가포르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네덜란드 항공이 일주일간 러시아 영공에 대한 비행 금지를 결정하면서, 27일 새벽 런던행 비행이 취소된 승객들이 항공사가 제공한 호텔 체크인을 위해 줄지어 선 모습이다. 사진 조아무개씨 제공
조씨는 “코로나19 때문에 3년 전부터 미룬 연수를 이제야 가게 됐는데, 결항에 대한 사전 통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항공편이 조정돼 승객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탑승객 중에는 재판에 참석하거나 중요한 시험을 치르기 위해 런던에 가게 된 한국인도 있었다고 한다. 도착지에 따라 경유 시간이 48시간까지 늘어나는 승객도 있어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조씨는 다음달 15일 귀국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기존 경로대로 러시아 영공을 통과해 한국에 올 수 있을지 미지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비행편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27일에만 인천공항에서 출발 예정이던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의 뮌헨행 항공편이 취소됐다. KLM이 운항하는 암스테르담-인천행 비행도 취소됐다. 모두 러시아 영공을 이용하던 항공편으로, 두 항공사는 앞으로 일주일간 러시아행 비행은 물론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는 비행을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유럽 항공사를 중심으로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는 비행편이 아예 취소되거나, 다른 우회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지연 운항이 이뤄지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50분 인천에서 출발 예정이었던 루프트한자의 뮌헨행 항공편 취소로 165명 승객이 불편을 겪었다. 루프트한자 관계자는 “(한국시각 기준) 어젯밤부터 지침이 적용돼 불가피하게 운항이 취소됐다. 승객들에게는 오늘 출발하는 다른 연계 항공사로 재예약을 해드렸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러시아를 피해 다른 항로를 찾아 운항할 예정이다. 당장 내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도 우회 항로를 이용해 고객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프트한자의 경우 일주일 동안 한국과 독일을 왕복하는 12편의 항공편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까지 국내 항공사가 받을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영공을 지나는 항공편 수 자체가 적고, 코로나19 영향으로 이용객 수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다가오는 목요일 모스크바로 떠나는 비행편이 있는데 아직까진 러시아 영공 통과가 가능한지 결정이 나지 않았고 러시아 쪽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유럽연합 국가들 위주로 조처가 취해지고 있어 아시아 국가 항공사가 받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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