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중국의 ‘한복 빼앗기’ 시도는 대국 패권주의

등록 2022-03-05 09:11수정 2022-03-05 09:25

[한겨레S] 이상수의 철학으로 바라보기
국가 주도 역사왜곡 논란
지난달 4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4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무료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지난달 4일 중국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분홍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은 여성이 중국의 오성홍기를 중국 선수단에 전달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이 복장은 한복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올림픽 같은 국가 주도 행사의 개막식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나라의 전통 복식을 입거나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요소를 보여주기 마련이기 때문에, 한복을 입은 인물이 등장하도록 개막식을 설계했다는 것은 중국이 국가 주도로 한복을 중국 문화라고 주장하기 위한 설계의 일환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한복 논란’
‘타국 문화도 내 것’ 폭력적 태도

중국은 왜 그럴까?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중국처럼 방대한 문화유산을 지닌 나라가 뭐가 아쉬워서 이웃 나라의 전통 복장이 자신들의 문화라고 우기는가?’ ‘중국이 자신들의 자존감 결핍을 비참하게 드러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성이 살아 있을 때의 생명력의 강렬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조선 중기의 문인 김만중은 문장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은 문장은 쇠와 돌과 현과 대나무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관현악 악기들과 같으니, 그 소리는 어느 한 가지가 다른 것을 대신할 수 없으며 각각의 악기는 나름의 지극한 바가 있다. 만약 하나가 다른 것을 대신하도록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음악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석경 천 대나, 만 대의 거(簴, 전통 시대의 타악기) 악기만으로 똑같은 소리를 내는 연주를 하여 그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게 되면, 다른 음악은 모두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文章如金石絲竹, 其聲不能相兼, 而各有所至, 苟欲兼之, 則亦未必成聲也. 千石之鐘, 萬石之簴, 聲滿天地, 衆樂皆廢. 김만중, <서포만필>)

중국의 한나라 때 최인이라는 문인도 “한 그루의 나무로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같은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또한 문화와 역사는 다양한 세력과 문화가 공존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더욱 다채롭고 아름답고 생명력이 강한 역사와 문화를 직조해내는 것이며, 그런 역사와 문화만이 우리 현대인에게도 더 많은 영감과 상상력을 안겨주는 법이다. 2016년 9월 산둥성 린쯔(임치)에 새로 문을 연 ‘제문화박물관’의 전시물 가운데, 우리 겨레의 선조라 할 수 있는 ‘동이족’에 대한 설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이족은 중국의 화하족(한족)을 형성한 주요 물줄기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이런 설명은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한 이후 이 박물관을 통해 처음 나타난 논리다.

중국 화하족(한족)의 기원 가운데 하나로 동이족도 포함된다는 논리는,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남긴 동이족의 너무도 뚜렷한 자취와 다양한 역사유물들을 몽땅 화하족의 것이라고 우기기에는 너무나 벅차기 때문에, 동이족을 “화하족을 형성한 주요 물줄기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함으로써 동이족의 문화유산을 한꺼번에 화하족의 것으로 꿀꺽 둔갑시키려는 편리한 논리를 새로 개발해낸 것이다. 이런 주장은 동이족의 고대사를 중국 것으로 편입시키고자 시도해온 중국의 악명 높은 ‘동북공정’의 일환이란 점에서 한국 학계의 대응이 시급하다. 중국이 이렇게 동이족 문화에 관한 입장을 선회한 것은 최근에 다량 발굴되고 있는 랴오허강(요하) 중류 유역의 홍산 문화와 뉴허량(우하량) 유적 등 ‘발해만 연안 문화’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발해만 연안 문화 유적’은 중국 한족이 자신들의 활동 무대라고 주장해온 만리장성 범위 바깥에서 발견된, 한족의 황허문명보다 시기도 더 오래되고 더 발달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덩샤오핑 “패권주의 주장 않을 것”
그의 지혜로운 말에 귀 기울여야

이 문화의 주인공들은 이미 국가 제도를 갖춘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의 단군신화에 곰 토템의 흔적인 ‘웅녀’라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곰 모양의 옥제 유물이 발견되어서 이 문화가 동이족과 관련이 깊을 것이라는 학계의 추측을 낳고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고대국가 가운데 고조선이 이 유적지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1963년부터 3년 동안 북한은 중국과 더불어 ‘고조선의 기원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이 지역에 대한 대규모 발굴조사를 양국 공동으로 진행한 적이 있다. 거기서 다른 지역에서는 발굴된 적이 없는 △고조선의 대표적 유물로 손꼽히는 ‘비파형 청동검’ △고구려의 고유한 무덤 양식인 ‘돌을 쌓아 만든 무덤’(적석총·돌무지무덤) △성에서 고구려만의 고유한 특징인 ‘치’(雉, 성을 공격하는 적을 포위공격하기 위한 방어 시설)라 불리는 돌출 부분이 갖추어져 있는 적석 성곽 등이 발굴되기도 했다. 이런 유물들은 이 지역의 문화유산을 만들어내고 이 터전에서 삶을 가꿔온 주인공들이 우리 겨레의 선조인 고조선인이나 고구려인임을 강력하게 시사하며 뒷받침해주는 유적·유물들이다.

이런 명백한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에 중국은 동이족도 화하족의 형성에 기여한 물줄기의 하나라는, 포괄적으로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를 자기 것으로 꿀꺽 약탈할 수 있는 이 억지 논리를 최근에 만들어낸 것이다. 중국 영토 내에서 벌어진 모든 역사나 문화가 모두 중국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장은 패권주의적인 주장이다. 오늘날의 영토 개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존했던 고대의 여러 문화와 역사 주체들을 모두 말살하는 폭력적 논리인 것이다. 현대 중국을 만들어낸 덩샤오핑은 “중국은 영원히 패권주의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덩의 후손들은 덩의 지혜로운 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웃과 조화 이루는 게 진짜 대국

중국은 이 유적지를 눈 딱 감고 하(夏)나라의 유적으로 단정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유적지 가운데 ‘하나라 박물관’ 같은 걸 떡 크게 짓고 유적지를 ‘하나라 유적지’라고 주장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이 지역을 한동안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으로 선포하고 모든 언론의 취재를 불허하면서 세월이 흐르면 이 유적지는 그냥 하나라의 유적지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중국이 지금까지 여러 차례 해본 국가 주도의 폭력적 역사왜곡이다.

그러는 대신 남북한과 중국 세 나라가 공동으로 발굴조사단을 구성하여 이 지역의 유적지를 함께 조사 발굴하고 공동 보고서를 펴낸다면, 이는 21세기 동아시아의 남북한과 중국이 얼마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다양성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는지 후대에 길이 귀감이 될 것이다.

연세대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 제자백가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기자를 거쳐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사상과 철학을 강의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을 썼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