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마틴이 2015년 작곡가·작가·출판인협회(ASCAP)가 주최하는 팝 뮤직 어워즈에서 작곡상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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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외로움이 날 죽이고 있어.”(My loneliness is killing me) 음악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가사다. 음악 역사를 바꾼 가사라고 하면 당신은 데이비드 보위나 밥 딜런 같은 시인들을 떠올릴 것이다. “내 외로움이 날 죽이고 있어”라니, 이런 중2병 가사보다야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더 시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대 소녀가 교복을 입고 춤을 추며 저 가사를 읊조린 순간 팝의 역사는 바뀌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20세기 최후의 슈퍼 히트곡 중 하나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베이비 원 모어 타임’(…Baby One More Time)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역사적인 데뷔곡의 가사는 좀 괴이쩍다. “마이 론리니스 이스 킬링
미”부터가 그렇다. 지나치게 문어체적인 가사다. 아무리 1990년대라지만 10대 소녀가 경쾌한 댄스곡을 부르다 “내 외로움이 날 죽이고 있어”라는 문장을 내뱉는 건 좀 뜬금없다. 이 가사는 그 미묘한 ‘뜬금없음’으로 인해 일종의 밈(meme: 짤)이 되어 여전히 인터넷을 떠돌고 있으니 한번 찾아보시길 권한다. 사실 더 괴이한 건 후렴구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히트 미 베이비 원 모어 타임”(Hit me Baby one more time)이라고 노래한다. “날 한번 더 때려줘”라니. 폭력적인 연인과 헤어진 뒤에도 그를 잊지 못한 채 “때려달라” 애원하는 내용일 리는 절대 없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의 진정한 의미는 2015년에야 밝혀졌다. 작가 존 시브룩의 책 <더 송 머신>(The Song Machine)에 따르면 이 노래를 만든 스웨덴 출신 작곡가 맥스 마틴은 ‘히트’(Hit)가 ‘콜’(Call)의 슬랭(속어)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이 가사를 “한번 더 나에게 전화해줘요”라는 의미로 썼다. 맥스 마틴도 이 가사가 원어민들에게는 어색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콜 미”보다는 “히트 미”가 더 노래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원어민 음반 관계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엉터리 가사가 노래에 뭔가 모호하고 새로운 기운을 안겨줬으니 맥스 마틴의 고집은 성공적이었다.
맥스 마틴이 작곡한 노래로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오른 브리트니 스피어스. AP 연합뉴스
나는 사실 맥스 마틴이라는 작곡가에 대한 나의 미묘한 애증을 표현하기 위해 그의 엉터리 영어를 끌어들였다. 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맥스 마틴이라는 이름은 지나가다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 틀림없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 헤비메탈 밴드를 거쳐 작곡가이자 음악 프로듀서가 된 남자다. 로빈(Robyn) 같은 스웨덴 가수들의 노래를 빌보드 차트에 올린 그는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보이그룹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데뷔 앨범을 만들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데뷔곡을 빌보드 1위로 만들면서 주류 작곡가로 뛰어올랐다. 당대의 보이그룹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의 앨범을 모두 맥스 마틴이 프로듀싱한 것도 재미있다. 두 그룹의 팬들은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기로 유명했는데, 결국 그들은 맥스 마틴의 손바닥 안에서 전쟁을 벌였던 셈이다.
1990년대를 상징하던 많은 음악 프로듀서들은 사라졌다. 음악이란 게 그렇다. 특정 유행의 생명력은 짧다. 1990년대 유행했던 것은 대체로 1990년대에 머무른다. 2000년대에 유행했던 것은 좀처럼 2010년대까지 지속되지 않는다. 나는 룰라의 ‘3! 4!’를 들으면 엉덩이가 절로 씰룩거리지만 2022년의 아이돌이 그런 노래를 들고나온다면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짓이냐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1990년대 최고의 히트곡 제조자였던 주영훈이나 김창환의 커리어는 오래전에 막을 내렸다. 맥스 마틴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0년대를 무사통과한 그는 2010년대의 팝 지분을 나눠 가진 여성 가수 케이티 페리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장 성공적인 앨범을 만들어냈다. 두 가수는 소셜미디어에서 으르렁거리는 숙적으로 유명했는데, 그 싸움에 가담한 팬들 역시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의 팬들처럼 결국 맥스 마틴의 손바닥 안에서 전쟁을 벌인 것이다.
2015년 맥스 마틴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1989>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프로듀서상’을 수상하자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보수적인 그래미의 성향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놀라운 결과였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기사 제목은 무려 “맥스 마틴이 정말로 첫번째 그래미를 탔다고?”였다. 맥스 마틴은 ‘10대를 위한 팝’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미는 10대 팝 장르를 철저하게 무시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래미로서도 불사신처럼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까지 살아남은 스웨덴 작곡가를 계속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맥스 마틴은 1998년부터 2022년까지 모두 24곡의 빌보드 1위 곡을 만들어냈다. 그의 기록과 비교할 만한 작곡가는 비틀스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뿐이다. 25년에 걸친 세월 동안 정상에 머무른 작곡가는 맥스 마틴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다. 이건 말하자면 ‘팝 독재’다.
이쯤 되면 내가 맥스 마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만명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맥스 마틴을 싫어하려 몹시 노력하고 있다. 30년째 노력했다. 문제는 그의 노래들이 거침없이 싫어하고 거부하기에는 무서울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케이티 페리의 ‘아이 키스트 어 걸’(I Kissed a Girl),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캔트 스톱 더 필링’(Can’t Stop The Feeling), 아리아나 그란데의 ‘뱅 뱅’(Bang Bang) 같은 노래들은 한번 듣는 순간 당신의 고막에 새겨진 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맥스 마틴의 특기는 멜로디다. 그는 귀에 한번 걸리면 절대 잊히지 않는 ‘훅송’의 대가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은 하나의 훅이 끝나는 순간 새로운 훅이 나오고 그걸 넘어서는 또 다른 훅으로 끝난다. 그래서 맥스 마틴의 노래들은 가장 달콤한 설탕으로 만든 솜사탕처럼 귀에서 녹는다.
맥스 마틴이 작곡한 노래를 부른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공연 모습. AP 연합뉴스
훅송은 금방 질리게 마련이다. 맥스 마틴은 2000년대 후반에 약간의 부침을 겪었다. ‘멜로디’를 중요시하는 댄스곡들은 힙합이 대세가 된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과거의 유물 같은 것이었다. 맥스 마틴은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를 일종의 ‘협업 시스템’으로 극복했다. 그는 계속해서 멜로디 중심의 훅송을 만든다. 자신보다 젊은 프로듀서들을 영입해 새로운 트렌드를 자신의 강력한 멜로디에 덧입힌다. 그러면 짜잔! 30년 전과 기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지만 뭔가 새롭게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히트곡이 탄생한다.
2020년대가 되면 맥스 마틴의 시대는 막을 내릴 거라 예상했다. 틀렸다. 그는 지금 가장 거대한 팝스타인 위켄드와 손을 잡았다. 2019년에 나온 위켄드의
앨범 <블라인딩 라이츠>(Blinding Lights)는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앨범 중 하나가 됐다. 만약 당신이 지금 현재 팝 음악의 지형도를 하나의 앨범만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앨범은 가장 가장 정확한 답변이 되어줄 것이다. 재미있게도 2021년 그래미 시상식은 위켄드의 앨범을 철저히 무시했다. 단 하나의 부문에도 후보로 올리지 않았다. 위켄드는 그래미 보이콧을 선언했다. 사람들은 그래미가 큰 실수를 했다며 불평했다. 나는 그래미의 선택을 조금은 이해한다. 나의 추측이지만, 그래미의 영감님들은 맥스 마틴에게 또 다른 ‘올해의 프로듀서상’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을 만들었던 팝의 공장장이 여전히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30년 팝 독재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미는 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맥스 마틴을 사랑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명료하고 명백하고 명확한 팝송을 갈구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토록 오래 권좌에 머무를 수는 없다.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에 대량 살상이 가능한 폭탄을 떨어뜨렸다. 서방을 향해 “한번 더 나를 때려봐”라고 외치는 듯 거침없이 떨어뜨렸다. 푸틴의 선택은 역사적 오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의 외로움은 결국 그를 죽이고야 말 것이다. 그래미의 선택은? 글쎄. 어쩌면 누군가는 키이우(키예프)의 지하 방공호에서 맥스 마틴이 작곡한 노래들을 들으며 용기를 얻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맥스 마틴의 팬이라면 푸틴과의 비교를 일종의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운드가 필요하다. 새로운 사운드의 설계자만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다. 정권을 교체하든 정치를 교체하든, 무언가는 교체되어야 결국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