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찾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무인 과일가게 내부의 모습. 서혜미 기자
지난 17일 오후 5시께,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과일가게 안은 한라봉·망고·딸기·참외·오렌지 등 과일 20여종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이 가득했다. 그러나 가게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가게 제일 안쪽에는 손님 스스로 계산하는 무인결제단말기(키오스크)만 놓여 있었다. 가게 인근 주민인 직장인 장아무개(28)씨는 “인근 시장보다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밤 10~11시쯤 과일이 너무 먹고 싶을 때 가끔씩 이용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소비의 확산, 인건비 부담, 구인난 등의 영향으로 무인점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고기·과일·건어물 등 각종 식재료와 옷·신발 등 다양한 업종으로 무인매장이 확산하는 추세다.
20일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공개한 자료(2021년 11월)를 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9월)보다 2021년(1~9월)에 자동판매기 등 무인결제 신규 가맹점은 44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편의점·코인세탁소 등으로 집중돼 있던 무인매장은 최근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서울 중구의 한 프랜차이즈 무인 밀키트 가게에서는 피자·치킨·라자냐·덮밥‧팬케이크 등 가정간편식품(HMR)과 더불어, 마른 멸치와 각종 건어물을 팔고 있었다. 가게는 키오스크 옆에 놓인 종이에 손님이 질문을 적으면 나중에 가게 주인이 그에 대한 답을 적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손님이 “연어밥이 맛있는데 왜 들어오지 않느냐”고 써놓자, 가게 주인이 “현재 본사에서 품절 상태라 가게 입고가 늦어지고 있다. 최대한 빨리 보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답을 남겼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프랜차이즈 무인정육점은 9.9㎡(3평) 남짓한 면적에 소불고기 거리·삼겹살·목살 등의 생고기와 제육볶음·된장찌개 등 다양한 밀키트가 진열돼 있었다. 지난해 말 무인정육점 운영을 시작한 이아무개(38)씨는 “인건비 등 고정비를 낮추고 아침 일찍 가게로 나와도 되지 않는 등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금 여유가 있으면 가게(무인매장)를 하나 더 하거나 다른 일을 한다더라. 나도 일이 손에 익으면 그렇게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의류업계도 무인매장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여의도에 개장한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에도 입장 전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물건을 들고 나왔을 때 자동결제되는 언커먼스토어가 들어섰고, 이탈리아 신발 브랜드 수페르가, 국내 청바지 브랜드인 랩101 등도 무인매장을 운영 중이다.
다만 비슷비슷한 무인매장이 인근에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매출이 떨어져 조기에 폐업을 하거나 가게를 넘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 또 무인매장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증가 추세를 보인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자료를 보면, 무인점포 절도 건수는 지난 2019년 203건에서 2020년 367건, 지난해 1∼9월 1604건으로 증가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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