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한많은 삶 끊으려 소송·집회 앞장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박두리(83) 할머니가 척추·발목 등에 이상이 생겨 2년여 투병 끝에 19일 오후 6시20분께 별세했다. 우리 사회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래 그의 죽음은 105번째가 된다.
17살 되던 해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꼬임에 빠져 대만으로 끌려간 박할머니는, 해방까지 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다. “일본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며 1992년 경기도 광주에 ‘나눔의 집’이 생기자마자 입주한 그는, 수요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1998년에는 일본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에 위안부 피해자에 사과·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 일부 승소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임종을 지켜본 유일한 혈육인 딸 전우순(47)씨는 “시모노세키 법원에서 이긴 뒤 ‘판사한테 삿대질하며 고함 한번 질렀더니 결국 내가 이겼다’고 좋아하셨다”라며 목이 잠겼다.
윤 총장은 “나눔의 집이 생길 때부터 할머니를 만나 가족처럼 지내왔다”며 “다른 할머니들이 빈소에서 ‘조금만 기다려라. 곧 따라갈께’라는 말씀을 하시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피해자들 가운데 118분이 살아계시지만, 다들 연세가 많으셔서 건강이 좋지 않다”며 “할머니들이 돌아가셔도 조문 한번 오지 않는 정부는 언제까지 이 문제를 방관만 할 것이냐”고 답답해했다. 그는 또 “지난해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했을 때 일본에선 ‘국내용’이라고 비웃었는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아무런 후속조처도 하지 않는 정부는 그 비웃음을 입증해 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박할머니의 장례식은 21일 오전 9시 안양 메트로병원에서 시민사회단체장으로 거행되며, 주검은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된다. 정대협은 “뜻있는 시민들이 십십일반 후원금을 내 고인을 조금이나마 위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흥은행 308-01-174619 예금주 정대협.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제공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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