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3월20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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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엇갈리고 있다 . 승부는 0.7%포인트 차로 갈렸고, 표 수로는 겨우 24만표 차이였다. 이것은 한국에서 치러진 역대 대선에서 가장 적은 표 차이로 기록된 초박빙의 승부였다. 승리한 당선자 쪽은 매우 박빙이었음을 마음속에 새기고 겸허하게 국정에 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고대 시가집 <시경>에는 조심스러운 군자의 모습을 그리면서 “전전긍긍한다, 깊은 물을 건너는 듯, 살얼음을 디디는 듯”(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한다고 했다. 유례없는 박빙의 승부였던 만큼 살얼음을 디디듯 한다는 뜻의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는 말을 취임 뒤 임기 내내 당선자의 좌우명으로 삼는다면, 성공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이 정도 표 차이로 점령군처럼 행세한다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자가 승리한 가장 큰 요인은 ‘정권교체’라는 큰 대의에 우리 공동체의 유권자들이 동의해줬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공동체의 유권자들은 균형감각이 강하다.
윤석열 당선자의 당선 이후의 행보는 겸손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낸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상례(喪禮)로써 그에 처하라”(戰勝, 以喪禮處之)고까지 말했다. 동아시아의 문화유적에는 개선문이 없다.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그것을 뽐내는 것을 노자처럼 강력 경계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례로써 그에 처하라”는 노자의 말은, 자신의 승리를 기뻐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손실을 더 슬퍼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철저한 반전주의자였던 노자가 말한 것은 그가 활동했던 중국 전국시대에 실제 수없이 벌어졌던 유혈이 낭자한 살육전쟁을 두고 한 발언이지만, 승자 패자가 나뉘는 치열한 경쟁에도 적용할 수 있을 법하다.
윤 당선자는 지난 20일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경내로 옮기겠다고 발표해 적지 않은 논란을 낳고 있다. 명분은 청와대가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이라서 “여기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보자 시절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썼던 그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국민들 또한 적지 않은 것 같다. 되레 그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강행이 ‘제왕적 대통령의 전형적인 태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윤 당선자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와 선을 긋겠다는 의지는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을 위해서는 예산 문제가 있고, 국방부라는 국가 안보의 중추가 영향받지 않아야 한다.
그는 아직 임기도 시작하지 않았다. 아직 대통령도 군 통수권자도 아닌 상황에서 여론조사나 공청회 한번 없이, 자기 신념만 가지고, 국방부에 공간을 요구하며 막대한 예산까지 드는 국가적 대사를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래서 되레 전형적인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지난주에 예정되었던 윤 당선자와 문재인 대통령의 회동이 늦어진 것도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요구 △임기가 두달 이상 남은 문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대한 제동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윤 당선자의 이런 행보들은 박빙의 신승을 거둔 겸손한 승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현자였던 안영은 군주에게 다음과 같이 조화로움(和)과 같음(同)의 차이를 설명한다. “만약 물로 국물에 간을 맞춘다면 누가 그걸 맛있게 먹겠습니까? 만약 거문고와 큰거문고가 한 가지 음만 탄다면 누가 그걸 즐겨 듣겠습니까? 무조건 같음만 추구해서는 안 되는 게 이러합니다.”(若以水濟水, 誰能食之? 若琴瑟之專一, 誰能聽之? 同之不可也如是. <춘추좌전>)
‘이수제수’(물에 물을 더함) 해서는 국물의 간을 맞출 수 없으며, ‘금슬지전일’(거문고와 큰거문고가 같은 소리를 냄)로는 좋은 음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도 말하기를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되 똑같아질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똑같아질 것만 추구하지 조화를 추구하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논어>)고 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도 “대립으로부터 조화가 나온다. 부조화로부터 가장 완벽한 조화가 나온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의 임기가 시작되면 주변 인물들 가운데 그동안 매우 친밀했을 세가지 그룹과는 거리를 두고, 그동안 생각이 전혀 다르다고 여기던 낯선 집단과 되레 더 가까이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첫째 그룹은 당선자를 지금까지 도와준 무속인 그룹이다. 이들의 역할은 이미 끝났다고 여겨야 한다. 둘째 그룹은 당선자가 검사 시절에 함께 일하고 신뢰했던 검찰 인사들이다. 이들에게 중책을 맡기고자 한다면, 이런 인사는 스스로도 ‘이수제수’라고 여겨야 한다. 민주당 등 야당이 180여석을 차지하는 여소야대 국회의 인사청문회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윤 당선자는 야당 인사 가운데 적임자가 있다면 그들을 내각에 적극 끌어들이는 것이 지혜롭다. 그들이 국정을 잘 수행한다면 그 국정의 성과는 모두 윤석열 정부의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통 크게 생각할 줄 안다면 윤석열 정부는 성공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협치를 이뤄낸 정부라는 찬사까지 받을 것이다. 윤 당선자가 세번째 멀리해야 될 그룹은, 아내와 장모 등을 필두로 한 친인척이다. 윤 당선자의 장모 최씨와 배우자 김건희씨는 당장 검찰 수사 대상일뿐더러, 이들에 대해서는 당선자 스스로도 ‘금슬지전일’로 여겨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패자 쪽에 서서 좌절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는 좌절감에서 벗어나서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하시라고 노자의 말을 들려드리고 싶다. 노자는 말한다. “화여! 복이 기대고 있는 곳이로다. 복이여! 화가 엎드려 있는 곳이로다.”(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지금 잘나간다고 기고만장했다가는 거꾸러지는 일만 남은 것이며, 지금 아주 어려운 곤경에 처했더라도 과오를 깊게 반성하고 각고분투한다면 전화위복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6월1일로 예정돼 있는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또다시 지혜로운 균형감각을 발휘할 것이다.
연세대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 제자백가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기자를 거쳐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사상과 철학을 강의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