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삭제한 운영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린이집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삭제한 원장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영유아보육법은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자’를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훼손한 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셀프’ 훼손을 막기 위한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영유아보육법에는 “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하는 자는 폐회로텔레비전에 기록된 영상정보를 60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 영상정보가 분실되거나 훼손되지 않게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아 영상정보를 분실 또는 훼손당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조항도 있다. 문제는 처벌조항에 폐회로텔레비전을 스스로 훼손한 자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울산 동구의 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ㄱ씨는 2017년 11월 담임교사 한명이 아동을 방치한 것 같으니 폐회로텔레비전을 보여달라는 학부모 요구를 받게 됐다. ㄱ씨는 공공형 어린이집 지정이 취소될 것을 우려해 수리업자를 불러 폐회로텔레비전 저장장치를 교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ㄱ씨는 영상이 든 하드디스크를 버렸다며 수사기관에 제출하지 않았다. ㄱ씨는 영유아보육법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영상정보를 60일 동안 보관하지 않아 4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했다.
1심은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영유아보육법은 주의의무 위반으로 ‘결과적으로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어린이집 운영자를 처벌한다는 취지로 해석해야지, 어린이집 운영자가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하거나 분실한 경우에는 위 조항을 적용해 처벌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ㄱ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1심과 다르게 법 조항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자’에서 ‘훼손당한’의 주체는 ‘영상정보’라 할 것”이라며 “어린이집 운영자가 저장장치를 버리거나 파기하는 등 적극적 행위를 할 때 야기되는 결과는 저장장치에 담긴 영상정보가 훼손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문어적으로 가능한 해석의 범위를 벗어난다거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 해석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자’는 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하는 자로서 안정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자를 뜻한다”며 “삭제와 은닉 등 방법으로 직접 이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자는 이 규정의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영상정보를 직접 훼손한 운영자가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자’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다”며 “원심은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자’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ㄱ씨 행위는 본인 사건의 증거를 훼손하는 것이라 다른 사람 사건에 관한 증거를 지울 때 적용하는 증거인멸죄 등으로도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설명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 다수가 어린이집 운영자 스스로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정보를 삭제하는 것이 잘못돼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법 개정을 통해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의 신수경 변호사는 “어린이집 원장이 스스로 폐회로텔레비전을 훼손해도 처벌할 조항이 없어 영유아보육법을 만들었는데, 대법원이 이런 취지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다. 타인이 폐회로텔레비전을 훼손했다면 재물손괴죄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한 일이다. 대법원 판단이 나온 이상 ‘훼손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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