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1일 노동절 기념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노동자와 4·16세월호국민연대 주최 1박2일 행동에 참가한 시민단체 회원,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자, 경찰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에서 이들을 차벽으로 막고 살수차를 동원해 캡사이신이 섞인 물대포를 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서울 도심 집회를 주관한 노동·시민단체와 대표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최근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경찰이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 정부 때 경찰이 집회·시위 참가자를 대상으로 손배소를 남발하면서 집회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도 화해권고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1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9단독 임범석 부장판사는 정부가 2015년 5월1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행진’ 및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철야 행동’과 관련해 민주노총과 4·16연대, 그 대표자들을 상대로 약 2200만원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 대해 지난달 21일 합의를 권하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양쪽이 서로 사과의 뜻을 표하고 민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현재 이 사건과 관련된 형사절차가 종결됐고, (화해결정이) 향후 쌍방이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이유를 밝혔다. 화해권고 결정은 양쪽이 결정문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안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7일 재판부에 이의신청서를 냈다. 국가 소송업무를 수행하는 법무부는 1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경찰 쪽에서 이의신청 의견이 왔고, 법리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의신청서를 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경찰 폭행, 장비 파손이 있었고 (일부 피고가) 관련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는데 ‘없던 것으로 하라’는 식이라 (이의신청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경찰이 집회 참가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고 법원의 조정을 거부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찰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관련 집회,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등에 대해 집회 참가자에게 손배소를 냈다. 이후 ‘인권 경찰’ 기조에 따라 꾸려진 경찰개혁위원회가 2018년 5월 ‘집회·시위 관련 손해배상소송을 남발할 경우 집회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취지의 권고를 내놓으면서 소송 제기는 주춤해졌지만, 과거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는 법원의 조정에 불응하고 있다. 경찰은 2015년 4월18일 세월호 1주기 집회 참가자를 상대로 낸 손배소에 대해서도
2018년 6월 법원의 1차 조정 권고를 거부한 바 있다. 이 사건은 결국 법원의 2차 조정 권고로 마무리됐다.
시민단체 쪽은 집회의 원인을 제공한 국가가 집회 참가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고 있다고 반발한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진실규명에 나서지 않은 탓에 집회를 열었는데, 일부 시위 참가자의 일탈에 대한 책임까지 집회 주최자 쪽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희 변호사는 “2018년 5월1일 경찰의 혼합살수에 대해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정도로 당시 시위 진압이 비상식적이고 위헌적이었다. 국가의 과도한 진압이 있었는데, 모든 책임을 집회 주최자에게 묻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책임 원리에 반한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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