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시를 받아 불법사찰에 가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추명호 전 국가정보원 국익정보국장이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된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불법사찰 혐의는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박연욱)는 14일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추 전 국장에게 1심과 같이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은 그 비난이 공무원 개인이 아니라 국가 전반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 처벌 필요성이 크다. 실제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 등의 정치공작으로 인권침해가 자행돼 민주주의 진전을 가로막은 점을 고려하면, 국정원법 위반을 형법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추 전 국장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 2년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추 전 국장의 상고심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추 전 국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우병우 전 수석의 지시에 따라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과 김진선 전 위원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을 불법사찰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우 전 수석은 추 전 국장을 시켜 자신의 처가 땅 매매 의혹 감찰에 나선 이석수 감찰관을 불법사찰하게 하는 한편, 김 전 위원장에게 정치적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부정적인 세평을 수집하도록 한 혐의로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광구 행장의 우리은행장 연임을 저지할 목적으로 비리첩보 수집을 지시해 보고받은 혐의도 있다.
이런 지시를 이행한 추 전 국장에 대해 1심은 이 전 감찰관과 이 전 은행장에 대한 불법사찰 혐의만 유죄로 판단했지만,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위원장 관련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우병우의 요청을 받은 피고인이 국정원 직원에게 김진선의 정보를 수집·보고하도록 한 행위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정상적 인사검증, 대통령 국정 보좌와 관계없이 처음부터 특정인의 약점 중심으로 부정적 내용 수집해 보고하도록 한 것에 해당한다. 정상적인 직권 행사라고 볼 수 없고, 위법·부당하게 직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 무죄로 선고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 여권 인사에 대해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정치공작을 벌인 혐의는 공모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3400만원을 빼돌려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게 전달한 혐의(업무상 횡령)는 1심과 같이 유죄로 인정됐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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