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자살 유가족의 쉼터 ‘새움’의 모습.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지난 13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한국생명의전화 맞은편에 자리한 건물 3층 ‘새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러 사람이 만세를 외치며 웃고 있는 그림이 걸려있다. 새움에서 자살 유족들을 상담하는 박인순(68)씨가 말했다. “이 안에 있는 그림이나 작품들은 전부 유족들이 만든 거예요.”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한 유가족들에게 집은 더이상 안식처가 아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5개년(2013∼2017) 전국 자살사망 분석 결과보고서’를 보면, 자살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장소는 자택(연평균 56.7%)이다. 박 씨는 “어떤 유족들은 집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하루 종일 울면서 거리를 헤매기도 한다. 가족이 집이 아닌 곳에서 떠났다고 해도, 같이 한 공간에서 숨 쉬고 살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머리와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새로운 희망이 움트는 곳’이라는 뜻을 담은 새움은 지난해 11월 문을 열고 자살 유족들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생명의전화는 기존에도 자살 유족을 위한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이어왔지만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해왔다고 한다.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은 “유족들이 다른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해도 되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새움에서는 상담과 유족들의 자조 모임, 그림 그리기 모임·성격검사 등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살 유족 당사자인 상담원 2명도 상주하고 있다. 박인순씨가 유족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역시 지난 2009년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0년 한국생명의전화를 찾아 유족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이곳에서 제공하는 상담원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상담을 요청하는 유족은 다양하다. 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찾아오지만, 청소년기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세월이 흘러 자신이 부모의 나이가 됐을 때 찾아오는 자녀들도 있다. 가족이 실종된 시점부터 찾아오거나 장례식 직후나 1∼2년 뒤, 혹은 10∼20년 후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박 씨는 “자살은 사별과 다르다. 평소에 잘해주지 못했다는 생각과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유족은 스스로를 계속 자책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타인에게 자신이 겪는 괴로움을 털어놓기 어려우므로, 주변 지인의 사회적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정신적·신체적 괴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유족들을 자살 고위험군으로 만들기 때문에 새움의 역할이 크다. 지난 2017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살유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유족 가운데 43.1%는 진지하게 극단적 선택을 생각 했다고 답했다. 하상훈 원장은 “자살자 1명당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 유족이 5∼10명 생긴다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매년 1만3천명 이상이 사망하는데 한해 유가족이 7∼8만명이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 원장은 “이분들을 잘 돌보는 것이 자살 예방의 큰 축”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모임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며 “혼자선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지만 같이 있으면 견딜 수 있다. 여기는 가족을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올 수 있다. 익명도 보장되니 편하게 와달라”고 했다. (새움 이용 문의: 02-763-9195)
서혜미 기자
h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