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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장애는 선택의 문제 아니잖아요”…삭발한 부모들 곡기마저 끊다

등록 2022-04-22 11:09수정 2022-04-22 13:54

전국장애인부모연대, 20일부터 단식농성
“내 도움 없어도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국정과제 채택해달라”
왼쪽부터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 조영실 인천지부장, 탁미선 부회장. 서혜미 기자
왼쪽부터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 조영실 인천지부장, 탁미선 부회장. 서혜미 기자

“많은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내가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서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 명대로 살고, 자녀들은 주어진 것들을 다 누리고 자기 명대로 살다가 올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지난 20일 저녁 8시께,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지하 2층에 자리 잡은 농성장에서 조영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 지부장은 피로로 부은 눈을 꾹꾹 눌러가며 말했다. 조 지부장의 28살 딸은 경증 발달장애인이다. 그는 “제가 없어진 뒤에 딸은 혼자 살 수 없다”고 했다.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그의 자녀는 옆에서 다른 사람이 챙겨주지 않을 경우,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하기도 한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져 인사불성이 된 적도 있다. 여러 곳에 취직도 해봤지만 번번이 재계약에 실패했다. 결국 조 지부장은 몇 년 전 카페를 차렸고, 딸은 그곳에서 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9일 부모연대 회원 등 발달장애 부모와 당사자 550여명은 전국 각지에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470여명은 서울 종로구 효자동 효자치안센터 앞에 모여 머리를 밀었고, 이곳에 오지 못한 이들은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통해 삭발에 동참했다. 이어 전국 각지에서 24시간 릴레이 단식에 돌입했다. 조 지부장과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 탁미선 부회장, 김수정 서울지부장 등 4명은 경복궁역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부모연대는 △주간 활동지원서비스 개편 및 확대 △지원주택 도입 및 주거지원 인력 배치 등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계획을 인수위가 국정과제로 채택해줄 것으로 촉구한다. 조 지부장은 “(아이들이)내가 있든 없든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인격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단식 농성에 나선 이유를 담담히 말했다.

2018년 4월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촉구 광화문 만인소’를 마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삼보일배를 하며 행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8년 4월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촉구 광화문 만인소’를 마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삼보일배를 하며 행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들이 거리로 나와 삭발을 하고 농성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4월2일 부모연대 회원 등 209명은 머리를 삭발하고 청와대 인근에서 68일간 천막 농성을 이어갔다. 이들의 호소에 같은해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4년이 지난 현재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정부 지원이 지금보다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탁미선 부회장은 “학교를 졸업한 성인이 일자리를 원한다면 일터를 더 만들고, 낮에 지역사회에서 다른 활동을 하고 싶어한다면 주간 활동서비스를 확대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독립해서 살고 싶어한다면 주택과 더불어 지원인력이 필요하다. 저희의 요구는 장애인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대책’의 하나로 2019년에 도입된 주간 활동서비스는 성인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문화관람, 교육 등 낮 시간대에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올해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인원은 1만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 성인 발달장애인은 약 19만명이다. 장애인주간보호시설·직업재활시설을 다니는 인원을 제외하더라도, 절반가량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다. 탁 부회장은 “최대한 부모들이 돌보려고 하지만, 저희가 힘이 빠지고 능력이 사라졌을 때를 생각하다 보면 시설에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렇지만 차마 시설에 보낼 수 없기 때문에 ‘널 보내고 나도 뒤따라가겠다’는 비극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에도 경기도에서 중증 발달장애인인 20대 딸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50대 여성이 구속됐다. 경찰 조사결과, 그는 갑상선암 말기 환자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일 삭발식에서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서비스 및 정책의 부족으로 인해서 부모가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매년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단식농성에 나선 부모들은 “이까짓 머리는 열번도 더 넘게 삭발할 수 있다”고 했다. 김수정 서울지부장이 말했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들과 같이 죽기보다는 그게 옳기 때문에 이 길을 선택했어요. 장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사느라 제일 취약한 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공공기반 서비스를 보장한다면, 비장애인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거예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등 550여명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삭발식 및 결의대회를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열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등 550여명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삭발식 및 결의대회를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열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20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지하 2층에 자리 잡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농성장. 서혜미 기자
지난 20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지하 2층에 자리 잡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농성장. 서혜미 기자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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