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ㄱ씨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상사를 신고했다. 지난해 입사한 ㄱ씨에게 그해 가을부터 상사는 “야”, “너”라고 부르거나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ㄱ씨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며 거짓말을 하고 회사에서 따돌렸기 때문이다. 급기야 요리도구를 ㄱ씨에게 던지는 일도 있었다. ㄱ씨는 가해자와 분리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분리를 해주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도 ㄱ씨가 신고한 사실을 알게 됐다.
ㄱ씨처럼 직장 내 괴롭힘을 겪어 신고한 사람 10명 가운데 6명은 피해자 보호와 비밀 유지 등 회사의 조사‧조처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4명 중 1명은 신고했다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 불리한 처우를 당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지난 3월24~31일 전국 만 19살 이상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24일 공개했다. 신뢰수준은 95%, 표본오차는 ±2.2%포인트다. 조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폭언·폭행 △모욕·명예훼손 △따돌림·차별 △업무 외 강요 △부당지시 등을 하나라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23.5%였다. 이는 지난 2020년 9월(36%) 조사와 비교했을 때 감소한 수치다.
그러나 괴롭힘을 당한 이들은 여전히 신고를 주저하고 있었다.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는 비율은 76.2%,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24.5%), ‘회사를 그만뒀다’(15.1%)라고 응답한 비율에 견줘 ‘회사 또는 노조에 신고했다’(3.6%)’,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2.6%)는 비율은 낮았다.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로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67.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0.6%), ‘내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5.3%) 등의 이유가 뒤따랐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변화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직장갑질 119 제공.
용기를 내서 신고를 하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 사례는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신고했다고 응답한 사람에게 신고 결과를 물어본 결과, ‘인정받지 못했다’는 응답률이 64.5%였다. 인정 받은 경우는 12.9%에 불과했고, 22.6%는 현재 조사 진행 중인 것으로 응답했다. 신고 이후 회사의 조사·조처(객관적 조사·피해자 보호·비밀 유지·가해자 징계 등) 의무가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61.3%였다. 또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당했다고 응답한 직장인은 25.8%였다.
현행 법은 사업주의 조사·조처 의무 불이행에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근로기준법 116조2항),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근로기준법 109조1항)을 부과할 수 있다. 권오훈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법 조항이 있어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방역지침 완화로 재택근무에서 사무실 근무로 전환되면서 괴롭힘이 우려된다는 상담이 접수되고 있는데, 회사는 괴롭힘 사건을 인권침해 문제로 보고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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