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29일째 단식 농성 중인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와 미류 책임 집행위원(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 9일 오후 국회 앞 농성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통령 취임식 전날 철거를 요청받은 차별금지법 제정 단식 농성장이 취임식 날에도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됐다. 대통령경호처와 경찰 등은 9일 농성장을 운영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 쪽을 찾아 “강제 철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날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경호처와 영등포경찰서, 국회사무처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국회 정문 앞 차제연 농성장을 찾아 “취임식 날 농성장을 강제철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날 밤 9시부터 철야농성을 진행할 예정이었던 차제연 쪽도 이를 저녁 문화제로 대체하고, 취임식이 진행되는 10일 오전 동안 단식 중인 두 활동가를 비롯해 5명 내외의 인원만 농성장에 남기로 했다.
이종걸 차제연 공동대표와 미류 차제연 책임 집행위원은 국회 2문 앞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29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차제연이 농성장을 설치한 국회 2문 앞은 본래 국회 경내로 분류돼 국회 청사 관리 규정에 따라 농성이 금지돼있지만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의원들의 요구로 농성장 설치가 허가됐다.
그러나 지난 2일 국회사무처가 대통령경호처 등과 협의했다며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 경호법) 5조를 근거로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9일까지 농성장을 철거해달라’는 내용을 차제연에 전달했다. 해당 조항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지정된 경호구역에서 질서유지, 출입통제 등을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차제연 쪽은 철거 요청을 받고 “국회 앞에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자리를 대통령 취임식이라는 이유로 철거해야 한다는 건 차별의 현실을 지우고자 하는 것과 다름없다”(이종걸 공동대표)며 철거를 거부했다.
철거 요청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발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경찰은 이날 오전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농성장 철거와 관련해) 최대한 협조를 구했고, (자진 철거가) 안 될 경우 안전 확보 차원에서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안전 확보에 (강제) 철거가 포함되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다. 기본권을 존중하면서 (취임식) 행사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균형감을 가지고 조치해나가겠다”고 했다.
농성장은 제자리를 지킬 예정이지만, 단식 중인 활동가들은 차별금지법 논의가 더딘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21대 국회에서 권인숙·박주민·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 4개 안을 발의한 상태지만 공청회 세부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미류 집행위원은 “정치권은 그동안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 기독교가 반대해서 등 다양한 이유를 대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뤄왔다”며 “찬성 의견이 높다는 여론도 이제 여러 번의 여론조사로 확인됐다. 이제는 정치권이 제정 못 할 이유가 더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갤럽은 지난 8일과 6일 각각 응답자의 75.2%, 57%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시민 30여명도 농성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국회 담벼락 앞 인도에 플라스틱 의자를 두고 앉아 한 끼 단식 농성에 나섰다. 단식농성에 참여한 원옥금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이주노동자의 가족결합권을 보장하고 직장 내 급여와 상여금 등에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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