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교제했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이석준씨가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흥신소 직원 ㄱ씨는 2021년 12월초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주소를 알고 싶다”라는 의뢰를 받았다. ㄱ씨는 며칠 뒤인 12월9일 낮 12시3분께 구청 직원인 ㄴ씨에게 이를 전달하고 ㄴ씨는 주소를 조회한 뒤 같은날 오후 1시34분께 ㄱ씨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ㄴ씨가 주소를 의뢰받고, 이를 다시 전달하기까지 불과 1시간30분이 걸렸다. 신변보호대상자 가족 살해 피고인 이석준(26)씨는 이렇게 입수한 정보로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구청 직원이 2년 넘게 흥신소와 개인정보 거래를 한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병철)는 지난 27일 수원시 권선구청 계약직 공무원 ㄴ(40)씨에게 징역 5년, 벌금 8천만원, 추징금 3954만원을 선고했다. ㄴ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ㄴ씨는 2018년 9월부터 수원시 권선구청에서 노점 및 노상 적치물 단속 등의 업무를 담당해왔다. 이때 자동차관리정보시스템, 건설기계관리정보시스템 등에서 개인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판결문을 보면 ㄴ씨는 이곳에서 조회한 정보를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해 텔레그램을 통해 흥신소 쪽에 전달하는 식으로 정보를 거래했다.
앞서 <한겨레> 취재에서 해당 시스템을 운영하고 관리·점검 의무가 있는 국토부는 ‘지자체 소관’이라고 책임을 돌렸고, 구청의 개인정보처리 현황을 점검하는 수원시청은 “해당 시스템의 점검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ㄴ씨가 넘긴 개인정보의 대가는 얼마였을까. ㄴ씨가 재판에서 받은 뇌물혐의는 크게 두가지다. 공무원이 부정행위를 저질러 뇌물을 받을 때 적용받는 ‘사후수뢰’와 일반적인 ‘뇌물수수’ 혐의다. 먼저 사후수뢰 혐의를 보면, ㄴ씨는 흥신소 직원에게 차량정보 등을 조회해주는 대가로 1건당 2만원을 받기로 했다. ㄴ씨는 흥신소 쪽에 2020년 6월30일부터 같은해 12월24일까지 총 881회 정보를 건네주고, 총 1762만원을 받았다.
또 ㄴ씨는 건당 금액에 더해 평소 개인정보 제공과 관련된 대가(뇌물수수 혐의)를 따로 받았다. 흥신소에서 정보를 주는 ㄴ씨에게 수시로 ‘뇌물’을 준 것으로 보인다. ㄴ씨가 개인정보로 흥신소와 본격적으로 ‘돈 거래’를 한 시점은 2020년 1월이다. 그해 1월 23일 자신의 통장으로 처음 100만원을 받은 뒤 2021년 10월 2일까지 약 2년간 총 26회에 걸쳐 2192만원을 받았다. 추징금 3954만원은 ‘사후수뢰’와 ‘뇌물수수’로 ㄴ씨가 챙긴 금액을 기준으로 했다.
재판과정에서 ㄴ씨의 변호사 쪽은 재판에서 특가법 제2조(뇌물죄의 가중처벌)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뇌물은 수뢰액이 3천만원 이상일 경우 특가법에 따라 가중 처벌된다. 만약 사후수뢰와 뇌물수수를 별도의 건으로 보면 각각 3천만원이 되지 않아 형량이 줄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둘을 포괄된 하나의 죄로 보아 가중처벌 항목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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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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