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위반 사고를 내고 숨진 70대에게 보험급여를 환수하겠다고 밝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강동혁)은 ㄱ(사망 당시 77)씨의 가족들이 5500여만원의 보험급여를 환수하려 한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환수고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ㄱ씨는 2020년 5월 새벽 5시34분께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적색 신호에 교차로에 진입했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과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피해차량 운전자는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고, ㄱ씨는 머리 쪽을 다쳐 무의식 상태에서 치료를 받던 중 이듬해 8월 숨졌다.
건보공단은 이 사고가 ㄱ씨의 신호위반으로 발생한 교통사고라며 ㄱ씨에게 지급된 보험급여 약 5500만원을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법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에 보험급여를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ㄱ씨의 교통사고에 ㄱ씨의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본 것이다. ㄱ씨의 가족은 “교통사고가 ㄱ씨의 중대한 과실로 인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 건보공단의 보험급여 전부를 반환하도록 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ㄱ씨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망인은 사고 당시 만 77살의 고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보다 청각 및 시각 능력이 저하되어 있어 운전 중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처하거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 다소 뒤떨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망인의 차량이 교차로에 진입하기 직전 교차로 신호등이 적색 신호로 바뀌었는데, 사고 당시 비가 내리는 새벽 시간으로 시야가 밝지 않은 상태였던 점을 고려할 때 망인이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판단착오로 정지신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교차로에 진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중대한 과실’이란 현저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상태로, ㄱ씨가 과속이나 음주운전을 한 것도 아니어서 신호 위반만으로 ㄱ씨가 현저한 주의를 결여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사고 후 검찰이 ㄱ씨의 과실이 크지 않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한 점 등을 고려해, 건보공단이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건보공단이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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