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는 지난 4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 ‘사업자는 바로 대출이 가능하니 법인계좌를 개설하라’는 말에 속아 계좌를 만들었는데, 이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이용되면서 기소된 것이다. 어머니 암 치료 등으로 벌금을 내기 어려웠던 ㄱ씨는 벌금 분납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벌금 미납으로 노역을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경범죄로 노역을 살아야 하는 빈곤·취약계층을 돕는 ‘장발장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가까스로 노역을 피할 수 있었다.
벌금형을 선고할 때 피고인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재산비례 벌금제’ 논의가 법원 안팎에서 재차 거론되고 있다. 경제력에 따라 벌금형이 주는 처벌 효과가 다르므로 같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소득과 자산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매겨야 한다는 취지다. 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수십년째 논의가 반복되는데, 벌금 낼 형편이 못 돼 구금을 택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 벌금형 문제라도 먼저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 필요성은 1980년대부터 본격화했다. 한국의 벌금형은 법정형 범위 안에서 피고인에게 벌금 총액을 결정하는 총액벌금제를 택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이 1975년 피고인의 하루 수입을 고려한 ‘일수벌금제’를 도입하자, 법무부(1992년)·사법개혁위원회(2004년), 국가인권위원회(2011년) 등에서도 일수벌금제 도입 필성을 검토·제기했다. 지난해 4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재산비례벌금제 도입을 “공정벌금”이라는 이름으로 주장했고, 국회에도 재산비례벌금제 도입을 위한 형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찬반 의견은 팽팽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가 지난 10일 개최한 ‘벌금형 양형기준의 모색’ 심포지엄에서는 재판에서의 실무적 어려움이 제기됐다. 장태영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판사는 “벌금형 양형기준에 피고인 경제력을 반영한다고 했을 때 어떤 내용을 포함할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경제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한겨레>에 “피고인의 경제 상황이 안 좋다고 해서 피해자의 피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경제력을 고려하긴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또 다른 판사는 “누군가에겐 벌금형이 가혹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신뢰성 있는 경제력 조사만 가능하다면 재산비례벌금을 매길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수십년째 논의가 쳇바퀴 도는 탓에 벌금형을 받은 저소득자가 불가피하게 노역장으로 가는 것부터 우선 막자는 요구가 나온다. 법무부 노역수형자 인권보호태스크포스 조사 결과(2021년)를 보면, 최근 5년간 사망한 노역수형자 21명 중 20명이 500만원 이하 소액 벌금 미납자였다. 사망자 모두 기저질환을 가진 탓에 짧게는 하루, 길게는 입소 뒤 5일 이내에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오창익 장발장은행 운영위원은 “500만원 이하 벌금형의 집행유예는 잘 없다. 벌금 분납 허가를 받아도 기간이 6개월 이내로 짧다는 문제가 있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모질게 처벌하는 현행 벌금형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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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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