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 행위로 숨진 윤승주 일병의 유족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국가배상소송 2심 선고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 복무 중 선임병의 구타 및 가혹행위로 숨진 ‘윤 일병 사건’의 유가족이 손해배상소송에서 2심도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윤 일병의 어머니는 선고를 마친 뒤 “군에서 아들과 딸을 잃은 가족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하느냐”며 눈물을 보였다.
서울고법 민사34-3부(재판장 권혁중)는 22일 고 윤승주 일병의 유가족 4명이 당시 병장이었던 가혹행위 주범 이아무개씨와 국가를 상대로 낸 6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주범 이씨가 윤 일병의 부모 및 누나들에게 4억9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고,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윤 일병은 이씨 및 하아무개 병장, 이아무개·지아무개 상병의 집단폭행으로 2014년 4월7일 숨졌다. 당초 군이 밝힌 윤 일병의 사인은 선임병들과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우발적 폭행을 당해 질식했다는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였다. 군 검찰은 이씨 등에 대해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며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그해 7월31일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수사내용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윤 일병 사망 전 한달 동안 잠도 재우지 않은 채 폭행하는 등 오랜 시간 윤 일병을 집단폭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란이 커지자 군 검찰은 가해자들의 혐의를 ‘살인’으로 변경했고, 2016년 대법원은 주범 이씨에게 징역 40년을, 폭행에 가담한 나머지 세 사람에게 징역 7년을 확정했다. 유가족들은 “육군의 조직적 은폐로 윤 일병 사망 뒤 4개월간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했다”며 주범 이씨 및 국가를 상대로 2017년 4월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국가의 책임을 묻는 유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1심 재판부는 “군 검찰부가 망인의 사인을 고의로 은폐했다고 보기 부족하다. 군 검찰은 그때까지의 조사를 바탕으로 가해자에게 상해치사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해 기소했던 것으로 보이고, 원고의 주장과 증거만으로 군 검찰관의 판단이 위법하다거나 처음부터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은 것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도 국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윤 일병의 사망에 국가는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에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67)씨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이날 선고가 끝난 뒤 안씨는 “군 수사기관은 질식사가 아니라는 여러 가지 뚜렷한 증거들에도 질식사란 입장을 고수했으며, 군인권센터 폭로 후 들끓는 여론에 떠밀려 그제야 폭행에 의한 사망으로 사인을 바꿨다”며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을 위한 나라가 맞나. 군에서 아들과 딸을 잃은 수많은 가족은 어디 가서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며, 진실규명을 위해 얼마나 거리를 헤매고 다녀야 하나. 너무 원통하다”고 말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유가족들은 이날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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