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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헌재, ‘한정 위헌’ 효력 부인한 대법원 재판 취소…끝이 아니다

등록 2022-06-30 17:15수정 2022-06-30 17:40

기관간 권한 갈등 계속
헌법재판소.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헌법재판소.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최고법원 지위를 둘러싼 자존심 대결이 계속되고 있다. 헌재는 30일 한정위헌 결정을 무시한 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소원 심판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무시할 경우, 판결을 취소할 수 있다고 재차 선언한 셈이다.

헌재는 30일 ㄱ씨가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헌재법 제68조1항에 대해 낸 헌법소원심판에서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까지 헌법소원에서 제외하는 규정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또 ㄱ씨가 한정위헌을 근거로 낸 재심청구를 기각한 대법원 판결도 취소했다.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따라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법원 스스로 판결을 정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사건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도 재해영향평가 심의위원을 지낸 제주대 교수 ㄱ씨는 뇌물 수수 혐의로 2011년 징역 2년형을 확정 받았다. 재판 도중 ㄱ씨는 형법상 수뢰죄의 적용을 받는 ‘공무원’ 범위에 지방자치단체 산하 심의위원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2012년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한정위헌 결정했다. 뇌물 받은 공무원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 자체는 위헌이 아니지만, 외부에서 위촉한 심의의원을 모두 공무원에 포함시켜 법을 적용한다면 위헌이라는 취지였다.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근거로 ㄱ씨는 법원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대법원은 2014년 “한정위헌 결정은 재심사유가 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이에 ㄱ씨는 재판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한 헌법재판소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또 대법원의 재심기각 판결과 이에 불복한 재항고 기각 판결도 취소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ㄱ씨의 손을 들었다.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까지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또 다른 한정위헌 결정을 내놓은 것이다. 전 국가기관에 기속력이 있는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재판은 위헌적인 기본권 침해 행위로 다시 헌법재판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다.

헌재는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는 법원 재판은 그 자체로 헌재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한 헌법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법원 재판’ 부분이 헌법소원심판 대상에서 제외됐더라도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수호하고 헌법이 헌재에 부여한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 회복을 위해 헌재가 다시 최종적으로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헌재는 이어 ㄱ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하고 재항고마저 기각한 대법원 판결도 취소했다.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며 재심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기각 판결은 ㄱ씨 등 청구인의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헌재가 법원 판결을 취소한 건 헌재 출범 뒤 두번째 일이다. 앞서 헌재는 1997년 같은 헌재법 조항에 대해 이길범 전 국회의원이 냈던 헌법소원 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하며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한 바 있다.

‘한정위헌’을 둘러싼 대법원-헌재 사이 힘겨루기는 그 역사는 오래됐다. 1997년 헌재 판결에 대법원은 “국회 입법권과 사법부 재판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밝힌 뒤 계속해 헌재 한정위헌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률에 대한 해석 권한은 대법원에 있기 때문에 위헌 결정이 아닌, 특정한 해석과 적용만을 위헌으로 선언하는 한정위헌 결정에 대해서는 기속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3년에도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은 헌법상 원리 원칙에 반하고 법적 근거도 없어 법원 등을 기속하지 못하고 재심사유도 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날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청구인 ㄱ씨 등은 여전히 대법원-헌재 사이 ‘핑퐁 게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대법원이 재심개시결정을 하면 문제가 없지만, 한정위헌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에 따라 다시 재심청구를 기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헌재는 다시 재심청구 기각 판결을 취소할 수 있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헌법에 대한 최고 해석 권한을 가진 헌재 결정을 전제로 법률을 해석하는 게 두 법원을 분리한 헌법 취지에 맞는 것”이라며 “국민 권리 구제 범위를 폭넓게 인정한 헌재 결정 취지를 대법원이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헌재 결정에 대해 대법원은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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