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소속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지난 2018년 3월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열린 청소·경비노동자 구조조정 철회 요구 집중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연세대학교 학생 3명이 교내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은 청소노동자 등이 임금 인상·샤워실 설치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여 수업에 방해됐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장까지 냈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 집회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한다.
연세대 재학생 이아무개(23)씨 등 3명이 지난 5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를 상대로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기재한 혐의는 업무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이다. 형법 314조 업무방해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나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이씨 등은 청소노동자들이 위력을 행사해 자신의 수업 들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노동자들이 미신고 집회를 열었다는 집시법 위반 혐의로도 고소했다. 지난달에는 학습권 침해로 인한 스트레스 및 ‘미래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고려해 청소노동자들이 약 638만6천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손배소도 냈다.
쟁점은 ‘수업 들을 권리’를 업무방해죄의 ‘업무’로 볼 수 있는지다. 그동안 홍익대 등 일부 대학의 본부 쪽은 학교 안에서 점거농성을 벌인 노동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이들 사건에선 쟁의행위의 일환으로 대학 본부 사무실을 점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로 인해 학교의 행정업무에 차질을 빚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처럼 학생들이 수업 방해를 이유로 형사 고소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윤여창 변호사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란 직업 기타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근거해 계속 종사하는 사무 또는 사업을 말하는데, 대학생이 수업을 듣는 행위는 업무에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 2013년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해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업무’라 함은 직업 기타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해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 또는 사업을 말하는 것인데,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해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은 업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사건은 국가 의무교육 실시 대상인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의무교육 대상자가 아닌 대학생에게도 곧바로 적용이 가능한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설령 대학생의 수업을 형법상 업무로 인정하더라도 업무 ‘방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류하경 변호사는 “노동자의 파업은 헌법에서 규정한 노동권이고, 집회·시위의 자유도 헌법상의 기본권이다. 이 사건 집회는 소음 데시벨이 높다거나 폭력 행사 등도 없었기 때문에 한계를 일탈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3월 말부터 매일 점심시간(오전 11시30분~오후 12시30분)을 이용해 1시간 동안 학생회관 앞에서 팻말을 들고 65㏈ 이하로 구호를 외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학내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해 학생이 소송을 낸 ‘초유의 사태’에 대해 개인의 권리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회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과)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 분위기와 개인이 조금도 피해를 봐선 안 된다는 분위기, 노동에 대한 폄하 등 여러가지 이유가 뒤섞인 현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대학교 청소노동자의 노동권 이슈가 제기됐을 때 가장 적극적인 학생들의 연대 활동이 있었던 연세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이러니하다”며 “개인의 권리의식이 노동자의 노동권보다 더 중요시되는 사례인 셈인데, 개인의 일탈로만 볼 게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에서 어떻게 슬기롭게 접근하고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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