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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5년째 영업 뛰는 70살 문희씨 “관둘 생각요? 아직은 없어요”

등록 2022-07-05 07:00수정 2022-07-05 15:27

1997년 45살 주부사원 입사…70살에도 현직
“이젠 고객 눈빛만 봐도 제품 살지 알겠어요”
경쟁 치열해도 ‘20여년 영업 노하우’로 승부

2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위니아딤채 매장에서 70대 김문희 점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점장은 45살 늦은 나이에 김치냉장고 방문판매를 시작해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위니아딤채 매장에서 70대 김문희 점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점장은 45살 늦은 나이에 김치냉장고 방문판매를 시작해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매출이 없으면 실의에 차다가도 누가 ‘김치냉장고 (판매) 하셔요?’라고 물어만 보면 제 목소리가 (높은) ‘솔’ 음으로 나오는 거예요. 저는 나이는 잊어버린 것 같아요”

주력상품인 김치냉장고와 함께 에어컨·냉장고 등을 판매하는 서울 양천구 위니아딤채 목동점 김문희(70) 점장은 고객과 대화할 땐 언제나 목소리를 높여 ‘솔’ 음을 낸다고 했다. “사회는 자신감이 없으면 쓰러져요. 나이가 70살이 됐지만 처진 목소리로는 대화를 못하겠더라고요”

지난 24일 매장에서 만난 김 점장은 왼쪽 팔목엔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고, 익숙한 듯 스마트폰으로 냉동고 사진을 찍어 고객에게 전송한 뒤 매출 서류를 넘겼다. “20년 전에 김치냉장고를 산 고객이 아직도 해마다 고추장, 간장을 담가 보내주세요. 마진을 남길 목적만으로 물건을 파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좋은 제품을 소개한다는 생각으로 진심을 다했어요. 이제는 고객 눈빛만 봐도 제품을 살 사람인지 아닌지 보입니다”

지난해 칠순을 맞이한 김 점장은 1979년 결혼해 18년을 주부로 지내다가 1997년 45살 나이에 주부판매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함께 일한 동료 대부분은 20대 후반∼30대 초중반이었지만 지금까지 현직을 지키는 것은 김 점장이다. 고령층 여성 노동자가 제품 판매 현장 일선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김치냉장고 주 고객층인 주부들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일의 특성상 제품과 고객에 대한 이해가 높은 주부사원들이 방문판매 시절부터 지금까지 남아 매장 영업을 맡게 됐다고 한다. 김 점장이 소속된 위니아에이드는 전국 8개 매장을 운영 중인데 이곳 점장의 평균 연령은 60대이고, 70대 점장도 김 점장을 포함해 두 명이다. 김 점장은 “능력 있는 여자들이 주부로 남은 경우가 너무 많았다”며 “이곳에서 20년 이상 일하고 있는 (주부사원 출신) 직원들이 많은데, 이들이야말로 회사의 굉장한 재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점장은 친구의 권유로 주부판매사원이 됐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불어닥쳤을 때 일을 시작했지만 1995년 출시된 김치냉장고 ‘딤채’ 시장의 급성장으로 “아이엠에프(IMF)가 온 줄도 모른 채” 영업에 매진했다고 한다. 영업직원이 고객을 직접 찾아가는 방문판매에 뛰어들었던 김 점장은 고객의 ‘삐삐’가 울리면 어디로든 갔다. “신용카드가 상용화되기 전엔 고객들 계신 곳으로 가서 계약서에 서명을 받고 지로로 납부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매출을 많이 할 땐 남편이 대신 운전을 해주고 밤 11시까지 고객들 집을 다녔죠. 그때 김치(냉장고)를 많이 팔아서 별명이 ‘딤채 부인’이 됐어요.” 

1999년 주부판매사원 3년 차였던 김문희 점장(왼쪽·사진 김문희 점장 제공)은 당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려 실적평가 1위를 했다. 현재(오른쪽·사진 김명진 기자)는 위니아딤채 목동점 점장을 맡으며 25년 차 직장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999년 주부판매사원 3년 차였던 김문희 점장(왼쪽·사진 김문희 점장 제공)은 당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려 실적평가 1위를 했다. 현재(오른쪽·사진 김명진 기자)는 위니아딤채 목동점 점장을 맡으며 25년 차 직장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세상의 변화는 김 점장이 서 있던 자리를 조금씩 좁혀 들어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가속화된 인터넷 온라인쇼핑과 홈쇼핑의 발달로 방문판매 영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김 점장을 포함한 주부 사원 일부가 매장 영업에 투입됐고, 이 과정에서 많은 동료들이 일을 관두기도 했다.

매장 영업에서도 성과를 보인 김 점장은 5개 매장과 30명 넘는 직원 매출 관리를 책임지는 실장으로 발탁됐고, 65살이 되던 해인 2017년까지 약 15년 자리를 지켰다. 온라인 유통망은 더욱 세밀해지고 경쟁 제품을 판매하는 대형 매장도 우후죽순 생긴 사이 김 점장은 50~60대를 거쳤지만 “일이 힘들단 이유로 관둘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김 점장은 “집에 가서도 매출 생각만 했다. 한 명의 고객 뒤엔 100명이 있다는 생각으로 신경 썼다”며 “후배들한테도 컴퓨터를 알려 달라고 해서 항상 연습했다. ‘나이 때문에 뒤처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더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를 인생의 ‘전성기’로 꼽는다.

2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위니아딤채 매장에서 70대 김문희 점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점장은 45살 늦은 나이에 김치냉장고 방문판매를 시작해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위니아딤채 매장에서 70대 김문희 점장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점장은 45살 늦은 나이에 김치냉장고 방문판매를 시작해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관리직을 내려놓은 뒤 2018년부터 매장 점장으로 고객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김 점장은 지난 25년간 쌓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 그는 “관리자로 있을 때도 계속 고객과 소통을 해 왔다. 지금도 20년 전 구매자가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해 온다”며 “경쟁이 정말 치열해졌지만 20여년의 노하우로 한 명의 고객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실제로 매장을 찾는 고객층 또한 김 점장과 닮은 중·장년 여성이 대다수였다. 김 점장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당시 일한 사당점에서 전국 매출 1등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 점장은 앞으로도 일을 계속하고 싶어한다. “지난해 돌아가신 친언니가 90살까지 약사로 일하셨어요. 약국을 접은 뒤에도 교회 봉사를 하고 싶어하신 분이에요. 언니보다 스무살이나 젊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일을 하고 싶지만, 은퇴를 하게 되면 영업을 하며 사람들을 상대한 경험을 살려 저와 같은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하는 일을 해 보고 싶어요.”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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