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이름이 길다는 이유로 외국인의 개인사업자 통장 개설을 거절한 은행의 행위는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ㄱ은행에 “외국인의 통장 개설과 관련해 동일·유사한 차별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하라”고 권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진정을 낸 외국인 ㄴ씨는 지난해 7월 개인사업자 통장을 만들기 위해 해당 은행에 방문했지만 사업자 상호를 포함한 개인 이름 글자수가 20자를 넘는다는 이유로 개설을 거절당했다. ㄴ씨의 영문명 글자수는 17자였고, 사업자명은 7자로 모두 합해 24자였다. ㄱ은행 쪽은 “진정인처럼 상호를 포함한 개인 성명이 20자를 초과하면 정보등록이 불가해 개인사업자 통장 신규개설이 어렵다”며 “내국인도 20자까지만 고객명 등록이 가능해 국적에 따라 제약을 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ㄱ은행은 “고객명을 20자 초과하여 등록하는 것은 개선 가능하지만, 전산개발에 필요한 인적, 물적 투입비용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돼 차세대 전산시스템 구축 시 개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고 인권위에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는 ㄱ은행의 행위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한 간접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가 시중 5개 은행 사실조회를 한 결과, 글자수 제한을 이유로 외국인의 개인사업자 통장 개설을 거절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고, 영문 기준 최대 100자까지 입력이 가능한 은행도 있었다. 이에 인권위는 “고객명 기입란의 글자수 제한은 일부 외국인들에게 현저히 불리한 결과를 야기해 이 사안은 간접차별 사건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간접차별은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했지만 그 기준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야기하고, 해당 기준이 정당한 것인지 입증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차별을 뜻한다.
인권위는 또 “타 은행 사례에서 보듯 고객명 기입란 글자수를 20자 이상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고, 통장 속표지의 예금주명 표기, 계좌 송금 시 예금주명 조회 등 기준을 별도로 정하는 사례도 있다”며 “개인사업자 통장 개설은 개인의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고, ㄱ은행의 기준을 개선하는 것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