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육군에 입대한 ㄱ씨(현재 일병)는 느닷없이 쏟아지는 잠 때문에 고초를 치렀다. 행군 도중 몸에 힘이 축 빠져 갑자기 주저앉거나, 대대장 훈화 시간 중 잠이 들어버리곤 했다. 무거운 물건을 나르다가도 몸에 힘이 빠져 사고가 날 뻔했고, 한밤중 깨 잠꼬대 수준을 넘는 비명을 지르곤 했다. 그는 지난 5월 희귀난치성질환인 기면증 진단을 받았다. 기면증은 2010년부터 입영 대상자의 병역 면제 사유에 포함된 질환이다.
정상적인 군 생활이 어려울 거라고 판단한 ㄱ씨와 가족들은 전역을 위해 장애등록증명서와 산정특례증명서를 제출하고 ‘현역 부적합 심사’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7월 ‘계속 근무’ 판정이 나왔다.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따라 현역장병도 기면증은 ‘1개월 이상 입원력 또는 6개월 이상의 치료력’이 있음을 입증해야 심사가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입대 전 발병 했으면 병역 면제가 가능할수 있었지만, 입대 뒤 발병한 ㄱ씨에게 ‘1개월 이상 입원’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ㄱ씨는 현역 부적합 심사를 다시 받기 위해 입원이 가능한 민간 병원을 찾아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길을 택했고,
소진 가능한 휴가와 병가를 모두 써 약 한 달 간의 입원을 마치고 오는 18일 군 복귀를 앞두고 있다. ㄱ씨는 입원 기록을 바탕으로 현역 부적합 심사를 재신청해 전역 여부를 다시 판정받을 계획이다.
ㄱ씨와 가족은 국가가 병역 면제 사유로 인정한 질병인데 병역 신체검사 대상자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현역 장병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ㄱ씨의 아버지(53)는 “현역 부적합 심사 및 의병 전역 결론이 날 때까지 적절한 치료 시설이 없는 병영이나 군 수도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에서 치료와 요양이 가능하도록 인권을 보장해 달라”며 지난 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ㄱ씨의 아버지는 1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기면증은 약물 투약 치료가 전부이고 수면하기에 가장 편한 환경이 중요한데, 내무생활에서는 그런게 쉽지 않다. ‘1개월 입원력’ 기준을 맞추기 위해 폐쇄병동으로 갔는데 병원에서도 자꾸 악몽을 꿔 아들이 힘들어했다”며 “국가가 인정한 희귀질환을 가진 현역병에게 입영 대상자를 위한 병역판정 기준을 적용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만약 군에 가기 전 아들이 신체검사를 받았다면 면제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들은 군 수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군 복무를 계속하다가 치료나 요양기회를 놓치고 상태가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ㄱ씨 가족은 군인권센터에도 상담을 진행하고 지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병전역을 판단하기 위한 엄격한 기준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현역병에게 병역판정 신체검사 기준을 적용하면 복무 중인 사병의 특수한 상황과 질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조철현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군 입장에선 전역을 시키기 위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절차가 필요하지만, 현재는 (현역병을 위한) 기준이 없어 병역 판정 기준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면증 증상 확인을 위해 입원을 할 순 있지만 (ㄱ씨와 같은) 한 달 입원을 기준으로 내세우는 건 기계적인 조처”라고 했다. 오한진 을지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도 “ㄱ씨과 같은 사례가 많진 않겠지만 의병 전역 기준을 새로 만들 필요는 있다”며 “기면증뿐 아니라 우울증이나 감정장애에 대한 기준도 보다 세밀하고 객관적으로 갖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은 1965년 제정된 뒤 시행과정에서 식별된 문제점이나 최신 의료에 맞지 않는 조항이 있을 경우 주기적으로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며 “기면증의 경우에도 관찰 기간의 적절성 등에 대해 향후 규칙 개정 시 군 내외 각 분야별 전문가와 병무청, 관련 학회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병역면탈 등 악용 가능성과 타 질환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검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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