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숙 대표가 자신의 산에서 직접 채취한 꽃송이버섯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임정숙 대표 제공
“케이(K)비건의 원조는 산나물입니다. 봄철 반짝 관심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사계절 건강식으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산나물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엠제트(MZ) 세대의 채식 열풍과 함께 건강식인 나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거친 현미나 잡곡밥에 나물 반찬을 먹는 소소한 서민 밥상이 대표 건강밥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산나물은 ‘봄에 나온 나물은 모두 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양소가 풍부하고, 체중 관리에도 좋기 때문이다.
산나물로 유명한 강원도에서도 동해안 최남단에 있는 삼척에 직접 기른 청정산나물로 건강밥상을 제공하는 ‘농부의 밥상’이 9월1일 문을 연다. 농부의 밥상 임정숙(42) 대표를 지난 22일 전화로 만났다.
“첫 취업은 무조건 수도권에서 하겠다며 고향을 떠났지만 지금 보니 부모님께서 평생을 지켜온 비탈진 밭과 가파른 산이 가장 큰 보물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죠.”
임 대표의 고향은 삼척시 도계읍에서도 차로 20분이나 걸리는 산골이다. 학창시절 학교가 있는 읍내까지 2시간이나 걸어 다녔어야 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시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기보다 할머니를 따라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됐다.
임정숙 대표가 직접 기른 청정산나물로 개발한 건강밥상을 선보이고 있다. 산림청 제공
하지만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그에게 산과 들은 너무 단조로웠다. 티브이 속 화려한 도시의 삶을 동경했다. 학교만 졸업하면 이 ‘산골’을 떠나는 게 소원이 됐다. 결국 고교를 졸업한 그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바람대로 산골을 떠났지만 도시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틈틈이 공부해 미용사로 변신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후 전자제품 판매업체에서 5년 정도 일하면서 연 매출 10억 이상을 달성하는 등 직장 안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마음은 늘 공허했다. 그러다 허리를 다쳤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 바쁜 도시 생활에 몸과 마음마저 모두 다친 그는 결국 2014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선 부모님을 따라 부지런히 산을 오르내렸고, 부모님이 해주신 시골밥상을 먹었다. 그 결과 씻은 듯이 몸과 마음의 병이 나았다. 임 대표는 “건강한 식사를 했더니 정신적·육체적 건강이 모두 회복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토록 내가 떠나고 싶었던 이곳에 미래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산나물을 뜯어 시장에서 파는 것 이상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그는 34살 늦은 나이에 국립한국농수산대 식량작물학과에 입학했다. 유기농업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 등으로 고향 집 주변 산림 10㏊를 샀으며, 아버지를 이어 임업후계자로 선정됐다. 해발 800m가 넘는 산을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내려야 하는 고된 일상이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도시생활 지쳐 34살에 귀향해
뒤늦게 농수산대학 졸업하고
속초 ‘농부의 밥상’ 5년 만에
오는 1일 삼척에 2호점 열어
“나물밥을 세계적 건강식으로”
산림청 ‘이달의 임업인’ 선정
2017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속초에 강원나물밥 전문식당인 ‘농부의 밥상’을 개업했다. 식당 이름은 그의 대학교 졸업논문 제목에서 따왔다. 부모님과 함께 힘들게 농사지은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고, 반찬은 자연에서 자란 산나물 반찬뿐이었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토속적인 음식 맛으로 방문객을 사로잡았다. 강원도가 인정한 ‘강원댁 도시락’ 사업 1호점으로 선정될 정도로 지역주민과 관광객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다. ‘건강한 한 끼 밥상’을 으뜸 가치로 내세우는 강원댁 도시락은 곤드레·참취·곰취·어수리 등을 곁들인 강원나물밥에 제철 떡, 전병, 장떡, 더덕무침, 버섯볶음, 두부, 한우 떡갈비 등 강원지역 식재료와 농가 맛집의 손맛을 더해 만들었다.
임정숙 대표가 직접 기른 청정산나물로 선보인 농부의 밥상 도시락. 산림청 제공
나물밥 전문점이 예상외로 인기를 끌자 임씨는 자신감이 생겼다. 고향인 삼척에서 직접 기른 산나물로 건강밥상을 제공하고 싶다는 평소의 꿈을 실천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2017년 농부의 밥상 개업 당시 그는 고향에서 식당을 열고 싶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계읍까지 누가 찾아오겠냐는 주위의 만류 탓에 관광지인 속초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이번엔 ‘플라스틱 제로’로 식당을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나물밥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산더미처럼 배출되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대신 스테인리스로 만든 도시락 용기 200만원어치를 특별 주문했다. 그는 식당뿐 아니라 10㏊에 이르는 산림에서 직접 산나물을 채취하고 요리하는 체험, 자신과 같이 마음과 몸이 아픈 이들을 위한 치유 체험, 산나물과 함께하는 한달살기 등도 준비 중이다. 그는 산골에서 직접 기른 산나물로 건강밥상을 개발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8일 산림청이 선정한 ‘이달의 임업인’에 선정됐다.
임 대표는 “우리나라는 산림이 울창하기로 유명하지만 그냥 숲으로만 방치되고 있다. 상당수 사람은 고사리를 먹을 줄만 알지 고사리가 나무에서 나는지 어디에서 나는지도 모를 정도다. 아직 걸음마 수준인 강원나물밥을 전주비빔밥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강식으로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