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자 검거와 엄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불법촬영물의 신속한 삭제와 접속 차단이지만 관련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 성범죄자 검거와 엄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불법촬영물의 신속한 삭제와 접속 차단이다. 온라인상에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것을 막아야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근절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꾸려졌던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전문위)가 ‘효율적인 피해 영상물 삭제·폐기’를 주요 과제로 꼽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관련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 국회가 관련 법안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위는 디지털 성범죄 발생 초기 피해 확산을 신속히 막기 위해 수사기관이 ‘응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성폭력처벌법에 신설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난해 10월 발표했다. 수사기관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 신고를 접수했을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업자에게 불법영상물에 대한 삭제 및 접근 차단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해 12월9일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 3개(성폭력처벌법·청소년성보호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를 대표 발의했다.
1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 법안 가운데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지난 3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됐다. 반면, 성폭력처벌법·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다가,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 뒤인 지난 16일 이들 가운데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여성가족위원회에 뒤늦게 상정됐다.
올해 3월 조기열 국회 과기방통위 수석전문위원은 의안 검토 보고서에 “현행법상으로도 조치의무사업자는 불법촬영물 등이 유통되는 사정을 인식하기만 하면 원인을 불문하고 유통방지 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에서 개정안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이들 법안 가운데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사기관이 인터넷 내용에 대한 규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및 비례원칙 위반 우려가 있다는 취지다. 방통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거쳐 부가통신사업자 등에게 삭제 요청을 하더라도 시간이 지체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삭제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심의해야 한다. 다만, 방통위는 ‘전자심의지원시스템’ 을 도입해 디지털 성범죄 정보는 ‘24시간 상시 심의지원’ 체계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위는 “24시간 상시 심의지원은 시정요구 불응을 전제로 시정명령이 가능하고 명령에 앞서 (서비스제공자 등에게) 의견 제출 기회를 부여해야 해 실제 삭제 등 조치 완료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불법영상물이 빠른 속도로 여러 플랫폼에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신속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조사관은 “방심위가 피해자 지원기관과 수사기관이 삭제를 요청한 불법영상물을 심의한 뒤 플랫폼 사업자에게 시정 요구를 하는 시간 동안 불법영상물 유포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고, 불법영상물이 무한 복사되고 여러 사람이 소지·시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영구적인 불안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사이버 위협 대응 보안기업 에스투더블유(S2W)의 이지원 부대표는 “디지털 성범죄자도 불법영상물 유포가 중한 범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크웹이나 텔레그램과 같이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채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상에서의 불법영상물 유통 방식에 맞는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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