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에 체류하게 된 외국인 ㄱ씨는 한국인 남성과 교제하다가 임신을 했다. 그러나 유부남이었던 이 남성이 아이 양육을 거부하면서 ㄱ씨 혼자 한국에서 아이를 기르게 됐다. ㄱ씨는 안정적인 양육을 위해 결혼이민 자격의 비자를 신청했다. 법무부는 ㄱ씨가 ‘국민과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이를 거부하고 방문동거(F-1) 비자를 내줬다. 하지만 이 비자로는 원칙적으로 취업 활동이 불가능하고 각종 사회보장제도 지원 대상에서 배제돼 ㄱ씨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ㄱ씨는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ㄱ씨처럼 대한민국 국적인 자녀를 키우기 위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안정적으로 취업하고 사회보장제도 수급 대상에 포함되도록 법무부 장관에게 체류자격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고 4일 밝혔다. 인권위는 법무부가 ㄱ씨에게 방문동거 체류자격을 부여해 국내 체류가 가능하도록 했고, ㄱ씨가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 신청을 하면 제한적이지만 취업이 가능해 법무부 조처가 인권침해는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최근 (ㄱ씨와) 유사한 사건이 중복 접수되고 있고, 대한민국 국적의 자녀를 출산·양육하는 외국인들이 체류자격 문제로 자녀를 적절히 돌보지 못하는 현실이 매우 심각함을 확인했다”며 정책 권고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인권위는 ㄱ씨가 받은 방문동거 체류자격은 한부모 가정의 아동 양육에 적합하지 않다고 봤다. 활동허가를 받아 취업을 하더라도 외국어 회화강사나 계절근로자 등 제한된 분야에서만 취업이 가능하고, 2년마다 비용을 납부하고 체류자격을 변경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점, 취업제한이 없고 체류기간 상한이 5년인 영주자격(F-5)으로 변경할 수도 없는 점 등 제한이 많은 것이다.
인권위는 “대한민국 국적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 가정 외국인은 각종 사회보장 제도를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고도 짚었다. 기초생활수급제도나 긴급복지지원제도, 한부모가족 지원제도 등은 모두 지원 대상 외국인을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한 자’로 한정하는 까닭에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ㄱ씨는 대부분의 복지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이에 인권위는 “(ㄱ씨와 같은 사례는)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그 실질은 결혼이민 체류자격자와 같다”며 “대한민국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자녀를 양육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장기적인 체류자격, 취업활동, 그 외 각종 사회보장이 필요해 방문동거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아동의 최선의 이익과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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