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17일 오전 국회 법사위회의실에서 열린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서는 골프 접대 사실이 드러나 수사 대상이 된 이영진 헌법재판관에 대한 헌재의 미온적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야당에서는 헌법재판 신뢰를 위해 우선 업무배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직 헌법재판관이 공수처에서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건이다. 업무배제가 상식 아닌가. 징계절차도 마련된 게 없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박종문 헌재 사무처장은 “헌법재판관에 대한 징계규정이 현재는 없다”며 업무배제나 징계는 어렵다고 답했다.
이 재판관은 지난해 10월 고향 후배가 주선한 골프모임에서 만난 사업가로부터 골프와 식사 등 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이혼소송 중이던 사업가에게 ‘가정법원에 아는 부장판사가 있으니 도와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시민단체 고발장을 받아 지난 8월 이 재판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임기 6년이 보장되는 헌법재판관은 수사대상에 올라도 별다른 징계규정이 없다. 이 재판관은 현재도 재판 업무에 관여하고 있다.
이 의원은 “제도 미비라면 헌재에 자문위원회도 있으니 소집하라고 했는데 진행된 게 있느냐”고 물었지만, 박 사무처장은 “그 건으로 자문위원회가 개최된 바는 없다”고 답했다. 헌재소장은 필요에 따라 헌재 내·외부 인사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소집해 안건을 논의할 수 있는데, 이 재판관 향응 수수 사실이 불거지고 석달이 넘도록 어떠한 내부 논의도 없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본인이 (사퇴 등을) 하지 않는다면 헌재소장이 헌재 신뢰를 지켜나가려는 모습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책했다. 같은 당 최강욱 의원도 유남석 헌재소장 등의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여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제기한 검찰 수사권 축소법 권한쟁의심판 사건를 놓고 다시 한번 격돌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단독 처리했던 법안의 위헌성을 강조하며 헌재의 조속한 결정을 촉구했다. 박형수 의원은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 탈당 뒤 무소속으로 참여한 안건조정위원회 등을 지적하며 “제도 취지 자체를 몰각시키는 것으로 헌법질서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은 시행령 개정으로 검찰 수사권을 도로 확대한 법무부를 비판했다. 최강욱 의원은 “‘검수완박’이라는 실체와 맞지 않는 정치적 선전으로 헌법재판을 오염시키려한다”며 헌재의 신중한 판단을 주문했다.
한편 이날 국정감사에는 최근 최초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이뤄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과 관련해 ‘법무부의 이해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에어컨 부품 제조사 두성산업이 형사 재판부에 이 법에 대한 헌법 재판을 구한 상황인데, 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져 헌재에서 이 법의 위헌성을 심사하게 됐다. 두성산업 쪽을 기소한 검찰을 대신해 법무부가 중대재해법 입법 취지와 입법 내용이 합헌임을 주장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 기조는 사뭇 다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경영계 논리에 따라 중대재해법의 형사처벌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자칫 헌재 법정에 선 원고와 피고 모두 중대재해법의 위헌성만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헌재가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해야 한다는 (양쪽 당사자) 이야기만 듣고 판단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 사무처장은 “당사자뿐 아니라 한국노총·민주노총·경제단체에서도 의견을 낼 수 있다”며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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