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고도 법원에 제때 제출하지 않은 검사 때문에 국가가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ㄱ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는 ㄱ씨에게 3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ㄱ씨는 만취 상태에서 2015년 10월 수면제에 취해있던 ㄴ씨를 성폭행한 혐의(준강간)로 기소됐다. ㄱ씨는 사건 당시 속옷만 입은 채 ㄴ씨의 방에 있었고, 이후 ㄴ씨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점 등을 바탕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객관적 증거가 있다면 범행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그러나 검찰은 “ㄴ씨 신체에서 채취한 시료에 ㄱ씨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정서를 확보하고도 ㄱ씨를 기소할 때 이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검사는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할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이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사건 검사는 ㄱ씨 쪽에서 국과수에 ‘재판부에 유전자감정서 사본을 보내달라’고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한 이후에야 재판부에 유전자감정서를 증거로 제출했고, ㄱ씨는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1·2심은 검사가 유전자감정서를 뒤늦게 제출한 행위가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1심은 “국과수의 유전자감정서는 ㄱ씨의 자백이나 부인, 소송 수행 방향의 결정 또는 방어권 행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자료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검사가 공소제기 당시 이를 증거목록에서 누락했다가 뒤늦게 증거로 제출한 것은 증거제출 의무를 위반한 것에 해당하므로 국가는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봤다. 다만 검사가 이를 의도적으로 숨기려 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정을 종합해 ㄱ씨에게 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현복 대법원 공보연구관은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확보한 경우 검사에게 그 증거제출의무가 있다는 종래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재확인하면서, 이러한 검사의 증거제출의무는 적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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