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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돼지들 ‘단백질피크닉’ 가는 그곳 갈비거리...‘잔혹 벽화’ 3800만원

등록 2022-10-28 15:27수정 2022-10-28 22:26

‘태릉갈비특화거리’ 홍보 목적
예산 3800만원 소요
동물단체 “생명경시 우려”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태릉갈비특화거리’ 들머리 한 아파트 옹벽에 ‘단백질 피크닉’이라는 문구와 함께 돼지가 그려져 있다. 고병찬 기자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태릉갈비특화거리’ 들머리 한 아파트 옹벽에 ‘단백질 피크닉’이라는 문구와 함께 돼지가 그려져 있다. 고병찬 기자

최근 경기 남양주 별내동 한 아파트 옹벽에 돼지 3마리가 푸른 산을 넘어 ‘단백질 피크닉’을 가는 벽화가 그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언뜻 보면 돼지 가족의 화목한 여정을 그린 벽화 같지만, 돼지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태릉갈비특화거리’(갈비거리)였다. 돼지들이 스스로 ‘갈비거리’로 향하는 ‘잔혹 동화’ 같은 벽화인 셈이다.

28일 남양주 별내동행정복지센터와 갈비거리추진위원회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벽화는 지난 2020년부터 추진된 ‘태릉갈비특화거리’ 조성 사업의 하나로 이달 중순 갈비거리 들머리에 그려졌다.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갈비거리추진위원회의 의견을 종합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지역 특성을 직관적으로 알릴 수 있는 도안을 정했다고 한다.

갈비거리는 1960∼70년대 갈빗집들이 모여들었던 이 일대 ‘태릉 갈비촌’의 명성을 다시 살려보겠다는 의미로 지난해 8월부터 불암로 109번 길을 따라 960m 구간에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 벽화를 그리는 데 예산 38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 벽화엔 해당 지역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돼지는 ‘단백질’이 풍부한 이곳의 대표 상품인 돼지갈비를, 돼지들이 오르는 산은 불암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벽화엔 지역에 있는 천보사·불암사를 의미하는 사찰과 인근 ‘산들소리 수목원’을 형상화한 두루미와 나무 그림도 있다.

별내동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2008년부터 신도시 택지가 조성되면서 쇠락하기 시작한 별내동 일대 갈비거리의 명성을 되살리자는 의지를 벽화에 담아 형상화한 것”이라며 “‘단백질 피크닉’이라는 문구는 갈비거리 인근에 수목원이 있다는 점이 녹아들어 간 것”이라고 했다.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태릉갈비특화거리’ 들머리 한 아파트 옹벽에 ‘단백질 피크닉’이라는 문구와 함께 돼지가 그려져 있다. 고병찬 기자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태릉갈비특화거리’ 들머리 한 아파트 옹벽에 ‘단백질 피크닉’이라는 문구와 함께 돼지가 그려져 있다. 고병찬 기자

어려워진 상권을 되살려보겠다는 좋은 취지로 그린 그림이지만, 동물권 단체에서는 지자체가 나서서 생명경시 풍조를 퍼뜨리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벽화에서는 돼지들이 드넓은 들판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선 97% 이상의 돼지들이 비좁은 공장식 축사에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물건으로 전락해 살아간다. 동물 학대에 노출된 돼지들의 현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지자체가 혈세를 들여 하나의 생명을 ‘단백질 덩어리’로 만들어 먹을거리로 희화화하는 것은 생명경시 사상을 무분별하게 퍼뜨리는 적절하지 못한 행위다. 주변 주민들이나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된다”고 했다. 실제 남양주에 산다는 한 주민은 이 벽화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지난 24일 자신의 에스엔에스(SNS) 페이스북에 “남양주시에 민원을 넣어야 되나? 종종 오가는 길목인데 볼 때마다 눈살 찌푸리며 지나다녀야 될 판”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별내동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여러 단체나 기관에서 정책 자문을 받아 진행한 사업이지만, 실제 화가들이 벽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돼지가 사실적으로 묘사돼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직 벽화가 완성된 것이 아닌 만큼 동물경시 등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정 검토하겠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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