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박지만·근령(오른쪽부터) 세 남매가 영정 앞에서 예를 올리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유죄 판결을 확정한 옛 군법회의(현 군사법원) 판결이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대검은 1978년 옛 군형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 확정판결을 받은 ㄱ씨 사건에 대해 이원석 검찰총장이 비상상고를 결정했다고 8일 밝혔다. 비상상고란 확정된 판결이 명백하게 법령을 위반한 경우 이를 시정하기 위해 검찰총장이 제기하는 구제절차다.
ㄱ씨는 1978년 10월 육군 보병 제7사단 소속 일병으로 복무하던 중 휴가병 3명을 사살하고 북한으로 탈출을 시도하던 무장간첩 3명에 대한 포획작전에 동원됐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일반전초(GOP) 근무지침을 위반하고 적을 보고도 공격을 기피했다’는 혐의였다.
당시 육군보통·고등군법회의는 ㄱ씨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1차). ㄱ씨가 특수전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지형지물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이 기습한 점, 이후 ㄱ씨가 병사 중 유일하게 소총 사격으로 대응한 점 등을 종합하면 그 이상의 대응을 요구하는 것은 강요 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을 맡은 고등군법회의는 “ㄱ씨가 전투능력을 충분히 갖췄다”며 재차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고등군법회의가) 환송 후 뚜렷한 새로운 증거도 없이 대법원 판시 취지에 상반하는 판단을 했다”며 또다시 무죄 취지로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법회의로 돌려보냈다(2차). 그런데도 고등군법회의는 세 번째 판단에서도 대법원 판시내용에 관해 법적인 논박 없이 ㄱ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튿날인 1979년 10월27일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군인의 상고권이 제한됐다. 결국 대법원 판결에 명백히 반하는 군법회의의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대검은 고등군법회의의 판결이 기속력에 위반되고, 위법한 비상계엄으로 ㄱ씨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됐다며 비상상고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원조직법상 상급법원의 판단은 하급심을 기속하므로 이를 위반한 고등군사법원의 유죄판결은 기속력 위반에 해당하고, 군인의 상고권을 제한한 10·27 비상계엄은 위헌·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에 따랐다는 것이다.
지난달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ㄱ씨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위법판결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진화위는 이 사건을 “군사적 특수성만을 강조해 대법원 판결 취지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위법한 판결”이라고 판단했다. 대검은 “비상상고가 인용돼 무죄판결이 선고될 경우 ㄱ씨의 형사보상 청구 등이 가능해지며, 향후 관련 절차 등에서도 적극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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