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김수정 변호사가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무법인 지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0년 넘게 국선변호인을 하면서 대리한 모든 소년범죄 사건에서 느낀 건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이었어요. 성매매에 내몰린 여자 아이들의 성을 사는 사람은 30·40대 남성들이었고, 남자 아이들은 어른에게 배워 포주 노릇을 하며 범행을 저지릅니다. 아이들의 잘못은 대부분 사회와 어른의 책임인데, 촉법소년 연령을 내려 처벌만 강화한다는 건 어른의 책임을 아동에게 떠넘기는 것과 같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비상임위원인 김수정(53·사법연수원 30기) 변호사는 촉법소년 기준 연령 하향에 대한 강고한 반대론자다. 그는 지난 10월 형사처벌 나이를 만 13살로 낮추는 소년법·형법 개정안을 법무부가 내놓자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에 실효성이 없다는
국가인권위 결정문을 뼈대를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이를 공약하고, 국정과제로 검토할 때부터 인권위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의견표명을 준비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인권소위원회 전문위원,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장,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아동친화도시 심의위원, 아동권리보장원 비상임이사 등을 맡았다.
법무부 입법예고 기간 만료(12월13일)를 일주일 앞둔 지난 6일 <한겨레>와 만난 김 위원은 “소년사법정책은 여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교육과 보호로 아동을 키워내는 정신을 구현해야 하는데, 이번 법 개정은 소년정책 실패의 책임을 다시 소년에게 지우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0월 법무부는 형사처벌에서 제외되는 미성년자 범죄 증가, 소년범죄의 저연령화·흉포화 문제 등을 거론하며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형사미성년자 나이 기준을 만 14살에서 만 13살로 낮추는 법 개정 계획을 밝혔다. 소년원 처우 개선과 교육 강화, 소년 보호관찰 전담인력 증원 등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법 개정의 무게는 아동 처벌 기조 강화에 실렸다.
과도한 학습 스트레스로 가출한 뒤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아이, 조부모와 살며 임신 사실도 모르다가 아이를 유기한 학생 등 김 변호사는 국선변호활동을 하며 다양한 소년범을 만났다. 고아원에서 나고 자란 학생이 임신 중이었음에도 가출을 한다는 이유로 ‘우범소년’이라며 소년보호재판에 회부한 사건을 맡았던 김 변호사는 “알고보니 학생이 시설에서 모욕적인 말을 많이 들어 반항심이 커져 있었다. 아이가 당한 일에 어른들은 관심이 없고, 아이가 저지른 일에 대해 어떻게 채찍을 휘두를지만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며 씁쓸해했다.
여러 경험 속에서 김 변호사는 적절한 시점에 도움을 줘야 할 어른과 사법 체계가 모두 부재한 탓에 재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는 “통계상 소년범 재범률을 보면 5범 이상 비율이 가장 높다. 사회 양극화 심화로 음으로, 양으로 심해진 차별 속에서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이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은 높아진 사회가 됐다”고 했다. 처방은 달랐다. “재범을 막지 못한 건 소년형사사법정책의 실패로 봐야한다. 보호 처분의 다양화나 각종 치료·복지시설 처우 개선 등은 이뤄지지 않은 채 처벌만 강화하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소년분류심사원에 과밀 상태로 격리되고, 재판을 받기까진 최장 일년 이상 방치되거나 우울증 약을 장기 복용하며 무기력하게 구금된 아이들, 열악한 보호관찰 환경 등을 봐 온 김 변호사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한 채 잘못된 처방전을 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소년범죄 흉포화·저연령화가 문제가 아니라 재범이 계속되는 이유, 사회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재사회화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고 봤다. “소년원을 더 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부지 제공을 반대하는 지역의 목소리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정 사건이 터져 처벌 여론이 들끓으면 촉법소년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수단일 뿐이죠.”
그는 인권위 결정문에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 필요성 근거로 제시됐던 통계와 국외 사례를 반박했다. “촉법소년 범죄가 점점 흉포화되고 있다고 확정지을 통계자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법무부가 제시하는 자료들은 (13살이 아닌) 거의 14∼19살에 의한 강력범죄”라는 것이다. 국가별 촉법소년 연령을 단순비교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한국도 보호처분상 10살부터 소년원 구금이 가능한데, 우리와 체계가 유사한 일본조차 12살부터 구금이 가능하다. (한국은) 이미 가장 낮은 나이부터 처벌이 가능한 셈”이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소년범 문제는 아동을 처벌 대상이 아닌 보호와 교육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주체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동의 재사회화를 위한 유연하고 세밀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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