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에 무단으로 건물을 짓는 행위는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경기도 파주에서 논 일부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ㄱ씨는 2020년 4월 지분권자들의 토지 이용을 방해하기 위해 건물을 신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사는 ㄱ씨가 이 땅에 건물을 짓는 바람에 토지의 효용을 해쳤으므로 재물손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물손괴는 타인의 소유물에 대한 효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침해하겠다는 인식을 가지고, 물건에 유형력을 행사해 효용을 훼손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1심은 ㄱ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로 판단했다. 1심은 “피해자들은 건물이 철거될 때까지 토지 부분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피고인의 건물 신축은 토지 효용을 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으나, 2심은 “건물 신축과정에서 토지가 손괴됐거나 형상이 변경됐다는 증거가 없다. 피고인의 행위로 토지매매에 법률상 장애가 생긴 것도 아니고, 논의 ‘효용을 해하는 행위’는 벼 재배를 어렵게 하는 행위일 것인데 그런 상황이 초래됐다고 볼 수도 없다”며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형사사건이 아니라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을 유지하면서 ‘토지 소유자에 대한 이용방해 행위가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했다. 대법원은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본래의 용법에 따라 무단으로 사용·수익하는 행위는 소유자를 배제한 채 그 이용가치를 영득하는(얻는) 것이므로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ㄱ씨의 행위는 토지에 건물을 지어 소유자로 하여금 토지의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일 뿐, 토지의 효용을 해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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