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1967년 11월 25일 보도한 원주경찰서 순경 살인사건 관련 공동 피고인 이아무개씨의 재심판결 관련 수기를 보도한 기사. 진실화해위 제공
1957년 경찰 강압 수사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사건 범인 누명을 쓴 피해자가 66년 만에 ‘무고’ 사실을 인정 받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수사기관의 고문·가혹행위에 의한 살인누명 사건’의 피해자 고 최제모씨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당시 일로 옥고를 치른 최씨는 1962년 석방됐지만 고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9년 뒤인 1971년 끝내 숨졌다. 이번 진실규명은 최씨 아들이 사건 신청을 하면서 이뤄졌다.
1957년 10월 강원도 원주시 육군 헌병대 소속이었던 최씨는 공범 2명과 원주경찰서 소속 순경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1심에선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상급심과 재심에서 모두 상해치사 및 사체유기죄 혐의가 인정돼 징역 8년형을 선고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최씨가) 검·경의 수사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받았지만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는 주점 여인의 허위자백을 근거로 기소됐다”고 했다.
조선일보가 1963년 5월 3일 보도한 원주경찰서 순경 살인사건에 대한 허위증언 관련 기사. 진실화해위 제공
진실화해위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수사 기관의 고문과 가혹행위, 자백 강요 등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최씨 등 피고인 3명과 관련 증인들은 각급 법원의 재판과 재판장의 신문, 변론서에서 수사기관의 고문 등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는 증인이 위증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경찰 강압 때문에 허위증언을 했다고 당시 언론에 폭로했던 점도 기사로 확인했다.
아울러 최씨와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이아무개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인 1967년 11월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도 중요한 증거가 됐다. 당시 알리바이가 입증돼 억울함을 풀 수 있었던 이씨는 기고문에 경·검 수사에서 전기고문, 몽둥이 폭행, 고춧가루를 탄 물고문 등 가혹 행위를 당했던 정황을 상세하게 적었다.
최씨 가족은 이번 결정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해 아버지의 법적으로도 무고 사실을 인정받고자 한다. 그의 아들 최선용(57)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4~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사정이 많이 어려워져서 어머니는 나와 큰형을 몇 년간 보육원에 두고 경제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재심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면 부모님이 묻힌 곳으로 가 직접 보여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이날 진실화해위도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당사자와 가족들의 피해·명예회복을 위해 재심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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