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이 입원환자에게 청소와 배식 등의 일을 시킨 것은 ‘인권 침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병원 쪽은 ‘작업치료’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관계 법령을 벗어나 임의로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이상훈)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ㄱ병원 공동운영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한 노동부과 행위 중단 권고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ㄱ병원 입원환자인 ㄴ씨는 2020년 5월 병원이 부당하게 청소, 배식, 세탁 등의 일을 시켜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해 8월 인권위는 ㄱ병원장에게 “병원 운영을 위한 청소 등의 노동을 환자에게 부과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ㄱ병원은 인권위의 권고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ㄴ씨 등에게 시킨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사회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책임감을 키울 수 있는 작업치료”라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인권위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ㄱ병원에서 청소 등을 환자에게 시킨 것은 헌법에서 정한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법령은 환자에 대한 작업요법의 요건과 기준을 정하고 있으며 내용과 결과를 진료기록부에 작성할 의무도 함께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ㄱ병원은 환자별로 어떤 이유로 작업요법 처방이 이뤄졌는지, 그 효과를 의사가 어떻게 평가했는지 등의 내용을 진료기록부에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부는 ㄱ병원이 치료 목적으로 청소를 시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신질환 입원치료의 경우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되기 때문에 인권침해 발생 우려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면서 “관련 법령은 정신질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요건과 절차를 엄격히 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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