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의료행위 설명을 미성년자 환자 본인이 아닌 부모에게 했다고 해서 의료법상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환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환자에게 직접 설명하기보다는 유대관계가 있는 부모를 통해 설명이 전달되도록 하는 게 더 바람직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병원이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설명할 의무를 위반했다며 환자에게 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당시 12살이었던 뇌질환 ‘모야모야병' 환자 ㄱ씨는 서울대병원에서 모야모야병 치료를 위한 간접 우회로 조성술을 시행하기 앞서 뇌혈관 조영술 검사를 받았다. ㄱ씨는 조영술을 받은 뒤 급성 뇌경색이 발생해 후유증으로 영구적인 우측 편마비가 왔고, 언어기능이 떨어졌다. ㄱ씨의 어머니인 ㄴ씨는 병원이 조영술을 하던 중 과실이 있었고, 조영술에 대한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며 병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1심은 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심은 병원의 설명 의무 위반을 인정해 ㄱ·ㄴ씨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ㄴ씨가 미성년자인 ㄱ씨의 보호자로서 시술로 인한 합병증·부작용 등을 설명한 시술동의서에 서명했지만, 환자인 ㄱ씨에게 직접 설명했음을 인정할 진료기록상 기재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병원이 의료행위 설명 의무 위반, 시술에 대한 ㄱ씨의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2심이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환자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료진이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아직 정신적이나 신체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미성년자에게는 언제나 의사가 직접 의료행위를 설명하고 선택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미성년자와 유대관계가 있는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을 통해 설명이 전달돼 수용하게 더 바람직할 수 있다”며 “의사가 미성년자인 환자의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에게 의료행위에 관하여 설명했다면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을 통해 미성년자인 환자에게 전달됨으로써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의사가 시술행위 설명을 환자에게 직접 했는지보다 의료행위에 대한 환자의 이해·결정 능력을 먼저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미성년자 환자에게 의료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고 선택·승낙할 수 있는 결정능력이 있는지 심리하고, 결정능력이 있다면 직접 설명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심리했어야 한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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