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지난 1월 열릴 예정이었던 ‘2023 굿바이전 인 서울’에 포함된 작품. 굿바이전시조직위원회 제공
앞으로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전시회를 열려면 작품 사진을 미리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풍자한 미술작품 전시를 허용했다가 뒤늦게 철회해 논란이 커지자 국회사무처가 관련 내규를 고치면서다. 기존엔 요건만 맞추면 전시 개최를 허가하던 체제에서 사실상 ‘내용 규제’를 한다는 취지다.
2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사무처는 지난 18일 ‘국회의원회관 회의실 및 로비 사용 내규’에 ‘전시회를 위한 로비 사용 허가’ 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에는 전시회 개최를 위해 로비 사용 신청을 할 때 국회시설물예약시스템에서 전시할 작품의 사진을 함께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작품 사진은 전시회가 열리기 두달 전에 제출해야 한다. 기존에는 △행사명 △행사 목적 △주최·주관 등의 간단한 정보만 기재하면 자유롭게 로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국회사무처는 전시회 허가를 위해 미술 및 법률 전문가 위주의 별도 자문위원회(9명)도 구성했다. 신설 규정상 국회사무총장은 전시회 허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자문위를 구성해 의견을 참고할 수 있다. 최종 허가 여부는 작품 사진을 제출받은 날로부터 3주 이내에 결정해야 한다.
전시회 허가 절차가 대폭 강화된 것은 앞서 국회에서 열린 정치풍자 전시회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국회사무처는 지난 1월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 등이 주최하고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12명이 공동 주관한 ‘2023 굿바이전 인 서울’ 전시회를 허가해놓고 개막 전날 급작스럽게 취소했다. 윤 대통령 부부를 풍자한 전시회 작품들의 면면을 뒤늦게 확인하고는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회의 또는 행사로 판단되는 경우 사무총장이 회의실 및 로비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내규를 내세워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전시를 주관한 의원들이 취소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자, 국회사무처는 전시회 당일 새벽 의원회관 2층 로비에 설치된 작품들을 기습 철거했다.
정치권에서는 사전 검열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 야당 의원은 “전시회 작품을 사전에 진열할지 안 할지 검열하겠다는 것인데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국회는 다양한 의견이 표출돼야 하는 곳”이라며 “사후적으로 조처할 수는 있겠지만, 사전에 검열하는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국회사무처의 이번 조처는 향후 유사한 논란을 사전에 봉쇄한다는 의미를 띤다. 지난 2017년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나체 그림에 합성한 작품을 전시해 논란이 일자 당내에서 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당시 국회는 규정 자체를 바꾸진 않았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사전 검열이란 지적에 대해 “기존에도 사무처가 내규에 따라 독자적으로 허가 여부를 결정해왔다”며 “앞으로 자문위 의견을 수렴해 판단의 공정성과 신뢰를 제고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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