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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모 사망 뒤 나타나 ‘재산 달라’…위헌심판대 오른 ‘불효자 상속권’

등록 2023-05-16 07:00수정 2023-05-16 10:25

유류분 제도 17일 첫 공개변론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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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씨는 어머니가 72살이었을 때부터 107살이 되어 사망할 때까지 35년 동안 제주에서 홀로 부양을 맡았다. 어머니 치료비로만 1억2000만원을 썼고, 아버지의 빚 45만원도 대신 갚았다. 자신의 부양을 도맡고, 남편의 빚을 대신 갚아준 것이 미안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땅을 ㄱ씨에게 물려준 뒤 사망했다. 그러자 평소 왕래가 없던 다른 자녀들이 ㄱ씨를 상대로 ‘유류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어머니가 ㄱ씨에게 생전에 땅을 증여하면서 자신들에게 돌아갈 유류분이 부족해졌으니 땅의 일부를 자신들의 유류분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다. 유류분 제도는 사망한 사람, 즉 피상속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상속해줘야하는 유산을 뜻한다.

■소송 40건 헌재 심판대 올라

ㄱ씨는 형제·자매에게 땅을 나눠줘야 할까? 민법 제1112조는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부모·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언보다 우선해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불효자여도, 형제·자매 사이가 나빠도 유산을 상속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ㄱ씨 역시 형제·자매들에게 상속받은 땅의 일부를 넘겨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ㄱ씨한테 증여한 땅은 “부양에 대한 대가”라며 “다른 자녀들의 유류분 계산에 이 땅이 산입돼선 안 된다”고 판결했다. 기계적인 유류분 적용에 제동을 건 법원의 첫 판결이었다.

이처럼 재산 형성에 기여한 정도, 부양 여부 등을 고려하지 않은 현재의 유류분 제도가 부당하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헌법재판소가 오늘 17일부터 유류분 제도와 관련된 법 조항의 위헌 심판을 위한 첫 공개변론을 연다. 이번 변론엔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장학재단에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기자 자녀들이 유류분을 침해당했다며 재단을 향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과 사망한 어머니가 생전에 손자 등에게 부동산을 증여하는 바람에 딸들의 유류분이 침해당했다는 사건이 병합돼 변론이 진행된다.

■피상속인 재산권 침해 여부 쟁점

헌재 심판대에는 유류분 관련 민법 조항의 위헌성을 따지는 사건이 모두 40건 올라와 있다.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1112조 등 6개 조항이 심사 대상이다. 핵심 쟁점은 유류분 제도가 피상속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냐는 것이다. 자신을 더 부양한 자녀나 공익재단에 전 재산을 넘기겠다고 유언을 남기더라도 유족의 유류분이 유언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헌재 변론을 맡은 정호영 변호사는 “가업에 더 많은 기여를 한 자녀나 제3자에게 증여를 한 경우, 사망 뒤 가족들이 증여받은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며 “과거 산업화 세대의 사망이 늘면서 유류분 소송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위헌심판제청 결정문을 보면, 일부 판사들은 사회가 급변하면서 유류분 제도의 입법 목적이 대부분 상실됐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20년 2월 서울중앙지법 이동연 부장판사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결정하면서 ‘평균수명의 연장’을 위헌 근거로 들었다. 부모가 사망할 당시 자녀가 40~50대라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다고 해서 생존권을 위협받는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유류분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여성 차별이 만연했던 과거엔 여성 배우자나 여성 자녀가 상속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이 또한 상당부분 해소됐다는 의견도 있다.

1인가구의 급증도 유류분 제도의 변화에 힘을 보탠다. 법무부는 지난 2021년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1인가구가 사망하게 되면 그의 형제자매는 유류분을 물려받을 1순위가 되는데, 사실상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형제자매에게 유류분을 남겨줘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자녀 생존위협 줄어” vs “정당한 기대권 보장”

유류분 제도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아무리 고령화, 핵가족화 등 가족구성이 바뀌었지만 남은 유족의 향후 경제 사정이 어려워질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상속재산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게 이유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법 당시의 취지가 퇴색됐을지라도 여전히 존재의의가 있다”며 “개정의 필요성이 바로 그 조항의 위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무부도 헌재에 낸 의견서를 통해 “청구인의 재산권이라는 제한되는 사익이 유류분 제도로 인해 달성되는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 및 상속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보상이라는 공익보다 현저히 크다고 볼 수 없다”면서 일부 개정의 필요성만 인정했다.

헌법재판소. <한겨레> 자료사진
헌법재판소. <한겨레> 자료사진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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