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일터에서 근무하다 직업병 진단을 받은 노동자가 산업재해 보상금을 받을 때 ‘업무상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곳 중 마지막 일터’의 임금을 보상금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진폐증 진단을 받은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평균임금 정정 불승인·보험급여 차액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ㄱ씨는 1979년∼1984년 광업소에서 채탄보조공으로, 1992년 터널신설 공사현장에서 착암공으로 3일간 일했다. ㄴ씨는 1973년∼1989년 탄광에서, 1992년 터널신설 공사현장에서 착암공으로 16일간 일했다. 이들은 퇴직한 후 진폐 정밀진단을 통해 각각 2006년, 1997년에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문제는 어느 근무지의 급여를 기준으로 산재 보험금을 계산할지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보면, 업무상 사유로 병에 걸려 장해가 남은 경우 일정한 ‘평균임금’을 장해보상연금·일시금으로 지급한다고 돼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ㄱ씨는 광업소, ㄴ씨는 탄광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보상금을 산정했다. 하지만 이들은 마지막 근무지인 터널신설 공사현장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오래 일했던 광업소와 탄광에서의 임금을 기준으로 산재 보험금을 정해야 한다고 봤다. 평균임금의 산정 기준은 ‘직업병의 원인을 제공한 근무지 중 마지막 근무지’인데, 터널신설 공사현장에서 일한 기간(3일, 16일)이 너무 짧아 진폐증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은 마지막 근무지인 터널신설 공사현장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터널신설 공사현장 업무가 진폐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이들이 평균임금을 높이기 위해 형식적으로 취업했다가 곧바로 퇴직한 것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ㄱ씨와 ㄴ씨는 업무상 사고로 일을 그만뒀다.
대법원은 2심을 깨고 1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직업병과 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 중 직업병 진단일에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이 산재 보험금 산정 기준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진단 시점과 가깝다는 이유로만 직업병에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근무지에서 받은 임금을 기초로 산재 보험금을 계산한다면, 같은 근무지에서 일하다가 직업병에 걸렸더라도 진단 직전에 어디서 근무했는지에 따라 산재 보험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는 ‘업무상 재해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라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진폐증과 같이 오랫동안 천천히 발병하는 직업병의 경우 여러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후 직업병을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며 “대법원 판결은 기준 적용 사업장이 어디인지를 밝혀 근로복지공단의 실무 운영 및 하급심에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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