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청업체 노동자가 사고를 당한 경우라도, 원청과의 협의에 따른 재하청이라면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ㄱ씨가 손해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전기통신공사업자 ㄴ사는 하청업체인 ㄷ사와 배전반 제작·운반·설치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ㄷ사는 배전반 제조를 전문으로 할 뿐 운반·설치 업무에는 전문성이 없었다. 이에 ㄷ사는 원청에 작업이 어렵다는 사정을 이야기했고, 원청업체는 운반·설치전문업체를 구해 배전반 운반·설치 작업까지 마쳐 달라고 요구했다. ㄷ사는 이 업무를 ㄹ에 의뢰했고 ㄹ사는 일용직 노동자인 ㄱ씨 등에게 배전반 운반·설치 작업을 맡겼다. 하지만 ㄱ씨는 2014년 2월 공사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사고를 당한 ㄱ씨는 원청인 ㄴ사가 가입한 보험사를 상대로 2015년 2월 소송을 냈다. 보험계약을 보면, ㄴ사 소속은 물론 하청업체 근로자가 입은 손해도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으므로 보험사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ㄱ씨를 하청업체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1·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ㄱ씨가 실질적으로는 하청업체인 ㄷ사의 지시를 받았으므로 ㄱ씨는 하청업체 근로자라며 보험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ㄱ씨를 ㄷ사의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며 ㄱ씨 패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다시 뒤집고, 보험사가 재하청업체 근로자인 ㄱ씨에게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비록 직접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 도급계약 체결 당시부터 작업의 상당 부분인 운반·설치 작업이 ㄴ사의 요구에 따라 재하청업체가 담당하기로 예정돼 있었다”며 “재하청업체와 그 근로자인 ㄱ씨는 보험계약에서 정한 공동피보험자 및 담보 대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원고(ㄱ씨)가 속한 업체가 원청과 직접 계약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이 업체가 운반·설치 작업을 담당하게 된 경위(원청의 사전 요구에 따라 업무를 담당하게 됨) 등에 비춰, 재하청업체도 ‘공동피보험자(하청업체)’에는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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