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일당 3명 구속·7명 기소
1년새 100억 날리고 회사 날리고
중견 식품제조업체를 운영하던 김아무개(47·서울 강남구)씨는 2003년 4월께 우연히 친구들과 강원랜드 카지노를 찾았다. 카드 두 장씩을 받은 어느 쪽이 9에 가까운 수가 나오는지 알아맞추는 일명 ‘바카라’ 게임을 시작한 김씨는 몇시간 만에 가지고 있던 1천만원을 모두 잃었다.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순간, 옆에서 게임을 하던 이가 ‘잘 될 것 같은데, 돈 좀 빌려드릴까요?’라며 접근해왔다. 김씨가 잠깐씩 돈을 딸 때마다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돋우던 또다른 남성도 ‘거 참, 아쉽네’라며 조금만 더 해볼 것을 권유했다.
이들로부터 평일 하루이자 1%를 약속하고 사채 수천만원 빌린 김씨는 이날 이후로 도박 빚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그는 이듬해 6월까지 1년 남짓한 기간에 이자를 합쳐 모두 100억원이 넘는 돈을 빌렸으며, 이를 포함해 200억여원을 도박에 탕진했다.
옆에서 함께 게임을 즐기던 이는 알고 보니 전문 사채업자였고, 김씨가 돈을 딸 때마다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잡던 사람은 사채업자를 소개해 주는 대가로 사채업자로부터 팁을 받는 일명 ‘병장’이었다. 이들의 꾀임에 빠진 김씨는 결국 회사까지 남에게 넘기고 가족들과도 뿔뿔이 헤어져야만 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정윤기)는 23일 강원랜드 방문객들을 상대로 사채를 빌려주고 1년에 몇백%의 높은 이자를 챙겨온 혐의(대부업법 위반 등)로 임아무개씨 등 3명을 구속하고 7명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양아무개씨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각각 별개 사채조직의 우두머리인 임씨 등 3명은 2003년부터 올해 초까지 500여 차례에 걸쳐 일주일당 5%(연리 240% 가량)의 이자를 받고 250억여원을 기업가 등에게 빌려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재력 있는 사람들만을 상대로 사채를 빌려줬으며, ‘병장’들 대다수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도 카지노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라고 밝혔다.
수사를 담당한 손석천 검사는 “도박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지만, 이들에게 거액을 빌려주며 계속 도박을 하도록 조장하는 대부업자들의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들 사채업자와 ‘병장’들의 카지노 출입을 제한하는 등 최소한의 대책이라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법조브로커 윤상림(54)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들 사채업자의 계좌를 발견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검찰은 법조브로커 윤상림(54)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들 사채업자의 계좌를 발견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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