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편법 승계 등의 혐의로 소환돼 조사를 받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5일 새벽 1시께 검찰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숨가빴던 수사 한달
3월26일 일요일 오전 7시30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사옥에 대검 중수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제지하는 현대차 직원들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한 뒤 현대차그룹의 ‘심장’이라 불리는 기획총괄본부에 들어가 재무 관련 서류를 상자에 쓸어 담았다. 재계 2위의 살아있는 거대 재벌을 상대로 검찰이 ‘칼’을 빼드는 순간이었다. 검찰의 이날 압수수색은 ‘금융권 마당발’ 김재록씨가 현대차 본사 사옥 증축 관련 비리에 개입했다는 단서와 글로비스 비자금과 관련한 내부제보를 근거로 이뤄졌다. 검찰은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집무실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현대차 수사는 김재록씨 의혹 수사의 ‘가지’일 뿐”이라며 연막을 피웠다. 그러나 압수수색 이틀 만에 7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이주은 글로비스 사장이 구속됐다. 이어 검찰은 채양기 현대차 기획총괄본부장을 29일 소환 조사하면서 “현대차 비자금 수사도 하나의 ‘나무’로 수사한다”고 선언했다.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본류’로 떠오른 것이다.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은 “압수물에서 내부제보 이상의 추가 단서가 나왔다”며 압수수색의 성과를 비로소 공개했다. 거침없이 진행되던 검찰 수사는 4월2일 뜻밖의 암초에 부닥쳤다. 정몽구 회장이 이날 오후 6시5분 갑작스레 미국으로 출국한 것이다. 현대차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검찰과 아무런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출국한 터라,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도피성 출국으로 의심을 받았다. 이튿날 검찰은 아들인 정의선 사장을 전격 출국금지하고 “수사가 길어질수록 혐의는 늘어난다”, “현대차의 편법 승계도 수사 대상”이라며 정 회장 쪽을 압박했다. 결국 정 회장은 출장 6일만인 4월8일 새벽 귀국했다. 현대차는 정의선 사장 소환 하루 전인 19일 “정 회장 부자가 보유한 1조원 상당의 글로비스 지분을 내놓겠다”는 ‘사회헌납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강도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검찰은 20일 아침 정의선 사장을 불러 다음날 새벽 4시에 돌려보내는 강도높은 조사를 벌였다. 이날 ‘정 회장 일가 불구속 방침’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검찰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불쾌감을 나타냈고, “김동진 부회장은 최종 책임을 질 위치에 있지 않다”며 정 회장을 처벌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24일 정 회장을 불러 15시간 가까이 조사를 벌인 검찰은 최종 형사처벌 수위를 놓고 긴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26일 오후 6시30분 , 수사팀이 올린 정 회장 구속 의견서를 재가했다. 숨가쁘게 달려온 현대차 수사가 한 달만에 한 고비를 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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