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에 비치된 반성문 본보기.
“저는 어려서부터 홀어머니를 모시고 꿏꿏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에 홀홀단신 올라와서 막노동을 전전하면서 눈물 젖은 밥을 벌어머겄슴니다. 그런 제가 이럭케 검사님앞에 서게 된 거슨, 오로지 술이 웬수입니다…이번 한번만 선처해 주신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업도록 열심히, 열심히 살게씀니다…”
누구나 한번쯤 이삿짐을 정리하며 십수년전에 썼던 반성문을 우연히 보며 설핏 웃어봤을 게다. 엄한 부모와 교사를 만나서, 또 진짜 심각한 ‘말썽’을 부린 까닭에, 한동안 날마다 ‘반성문’을 썼던 학창시절의 기억을 지닌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반성문이 사춘기 청소년들의 통과의례만은 아니다. 반성문, 어른도 쓴다. (위에 언급한 반성문은 검찰의 설명을 듣고 재구성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1층 민원안내실에는 고소·고발장 등의 본보기 양식을 구비해 제공한다. 이중에는 반성문 양식도 있다.
검찰은 잘못을 저지른 피의자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릴 때, 피의자로 하여금 반성문을 써내도록 하고 있다. 기소유예 처분이란 한마디로 ‘죄는 있지만 이런저런 사정을 봐서 용서해준다’는 처분이다. 우리나라는 검사가 범죄자를 기소할지 안할지를 결정할 재량권을 가지는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기소유예’ 제도가 있다.
형사소송법 247조는 ‘피의자의 범행이 기소요건에 해당하더라도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후의 정황 등의 사항을 고려하여 소추가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기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언론이 검찰관련 기사에 ‘사법처리’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다.
‘기소유예’는 검찰의 기소권 독점 따른 기소편의주의의 소산 변찬우 서울중앙지검 총무부장은 “반성문 제출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실무적으로 일선 검사들에게 지시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성매매 남성들이 단골이었고, 지금은 단순 폭력사건을 저지르고 붙잡혀온 아주머니와 소년범들이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년범뿐 아니라 어른들도 반성문을 제출해야한다”며 “짧게 내는 사람도 있고, ‘제가 어렵게 커서 서울까지 와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중…’운운하며 A4지 열장이 넘게 빽빽히 채우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검사의 기소유예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미국검사도 마찬가지. 대륙법쪽에서는 특이하게 프랑스에서도 검사의 기소편의주의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우리 사법제도의 ‘줄기세포’인 일본도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기소법정주의’를 채택해, 범행이 어떤 요건을 채우면 무조건 기소하도록 되어 있어 기소유예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있다. 양날의 칼 ‘검찰 기소편의주의’
‘잘’ 활용되면 “범죄자 양산 방지”…악용땐 “권력의 사냥개” “수사기관인 검찰이 법관도 아니면서 죄인을 마음대로 기소유예하는 것은 지나친 권한 아니냐?”는 질문도 있을 수있다. 아닌 게 아니라 검찰의 몇몇 기소유예는 욕을 먹었다. 검찰은 1994년 10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쿠데타를 수사한뒤 12.12 쿠데타를 명백한 군사반란으로 규정하고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기소할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 논쟁이 계속돼 국론 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면서 “피의자들이 지난 14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면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두 사람은 다시 기소돼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기소유예 제도는 검사의 재량권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범죄자의 양산을 막는 ‘선기능’이 더 많다. 김이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기소유예 제도는 잘 운영되면 편리하고 좋은 제도”라며 “어떤 기준을 만들어 거기에 해당하는 범행을 저질렀다고 죄다 기소토록 하면, 범죄자가 무지막지하게 양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제어할 수 없는, ‘내 안의 어린이’가 저지른 잘못을 법으로 단죄하는 대신 마음으로 뉘우치게 만드는 제도인 셈이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기소유예’는 검찰의 기소권 독점 따른 기소편의주의의 소산 변찬우 서울중앙지검 총무부장은 “반성문 제출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실무적으로 일선 검사들에게 지시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성매매 남성들이 단골이었고, 지금은 단순 폭력사건을 저지르고 붙잡혀온 아주머니와 소년범들이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년범뿐 아니라 어른들도 반성문을 제출해야한다”며 “짧게 내는 사람도 있고, ‘제가 어렵게 커서 서울까지 와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중…’운운하며 A4지 열장이 넘게 빽빽히 채우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검사의 기소유예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미국검사도 마찬가지. 대륙법쪽에서는 특이하게 프랑스에서도 검사의 기소편의주의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우리 사법제도의 ‘줄기세포’인 일본도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기소법정주의’를 채택해, 범행이 어떤 요건을 채우면 무조건 기소하도록 되어 있어 기소유예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있다. 양날의 칼 ‘검찰 기소편의주의’
‘잘’ 활용되면 “범죄자 양산 방지”…악용땐 “권력의 사냥개” “수사기관인 검찰이 법관도 아니면서 죄인을 마음대로 기소유예하는 것은 지나친 권한 아니냐?”는 질문도 있을 수있다. 아닌 게 아니라 검찰의 몇몇 기소유예는 욕을 먹었다. 검찰은 1994년 10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쿠데타를 수사한뒤 12.12 쿠데타를 명백한 군사반란으로 규정하고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기소할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 논쟁이 계속돼 국론 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면서 “피의자들이 지난 14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면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두 사람은 다시 기소돼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기소유예 제도는 검사의 재량권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범죄자의 양산을 막는 ‘선기능’이 더 많다. 김이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기소유예 제도는 잘 운영되면 편리하고 좋은 제도”라며 “어떤 기준을 만들어 거기에 해당하는 범행을 저질렀다고 죄다 기소토록 하면, 범죄자가 무지막지하게 양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제어할 수 없는, ‘내 안의 어린이’가 저지른 잘못을 법으로 단죄하는 대신 마음으로 뉘우치게 만드는 제도인 셈이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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