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청구 사실 알리지도 않고 수사기관 구인장 집행 여전
피의자 변호인 선임기회 제한돼 영장복사 규정도 없어 개정 시급
피의자 변호인 선임기회 제한돼 영장복사 규정도 없어 개정 시급
“조사할 게 있으니 한번 더 경찰서로 나오시죠.”
지난달 돈 다툼으로 고소당해 세차례 조사를 받은 김아무개씨는 최근 이런 전화를 받고 별생각 없이 경찰서를 찾았다가 그대로 구속되고 말았다. 그를 부른 경찰이 “어제 오후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는데, 오늘 오후 2시에 영장 실질심사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한 것이다. 김씨는 변호사 선임은커녕 가족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못한 채 실질심사 법정에 서야 했던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영장 실질심사를 위한 구인영장을 집행할 때 피의자에게 영장 청구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피의자 방어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인영장을 집행할 때는 직접 피의자의 주거지로 찾아가야 하지만, 수사기관이 인력난 등을 이유로 전화로 통지하면서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장 청구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득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영장판사로 재직하던 지난해 초 피의자들이 “경찰에 속았다”고 법정에서 호소하자, “원칙대로 주소지에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부를 땐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실과 심문 일시를 미리 알리라”는 내용의 공문을 서울중앙지검에 보냈다.
김 판사는 공문에서 “수사기관은 ‘도주 우려가 있다’고 하지만, 피의자가 소환에 불응할 땐 실질심사 없이 곧바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서울지검의 몇몇 검사들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피의자에게 영장이 청구된 사실과 심문 일시를 미리 알린 사례가 계기가 됐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서울지역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인력 부족으로 피의자를 직접 찾아가 구인장을 전달하기 어렵다”며 전화로 피의자를 소환할 때 영장 청구 사실을 알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관행 때문에 피의자는 변호인을 선임할 기회를 크게 제한당한다. 특히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 고위 공직자와 달리 서민들은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나서야 변호사를 선임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이종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가족이 변호인을 선임했는데도 피의자는 실질심사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를 때가 많다”며 “준비가 부족한 변호인을 위해 실질심사 시간을 늦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실질심사 기일 변경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므로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현행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구속영장 복사에 관한 규정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변호인은 영장이 청구됐는지 검찰에 직접 확인한 뒤, 법원을 찾아가 판사의 허락을 받고 영장을 복사하도록 돼 있다. 형사소송규칙을 보면 변호인은 긴급체포서, 현행범인체포서, 체포영장, 구속영장 또는 그 청구서를 보관하고 있는 검사, 사법경찰관 또는 법원사무관 등에게 그 등본의 교부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영장 실질심사에 관한 규정은 없다. 김득환 부장판사는 “구속적부심에 관한 규칙을 영장 실질심사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그나마 사전구속영장에 대해서는 아무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현대차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토요일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상배(61) 전 산업은행 부총재의 변호인은 주말 당직 근무자가 “규정이 없다”며 영장을 복사해주지 않아 범죄사실도 모른 채 실질심사에 들어가야 했다. 신태영 변호사는 “박씨 같은 경우도 그랬는데, 서민들이야 오죽하겠냐”며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검찰에서 영장을 복사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지난달 현대차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토요일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상배(61) 전 산업은행 부총재의 변호인은 주말 당직 근무자가 “규정이 없다”며 영장을 복사해주지 않아 범죄사실도 모른 채 실질심사에 들어가야 했다. 신태영 변호사는 “박씨 같은 경우도 그랬는데, 서민들이야 오죽하겠냐”며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검찰에서 영장을 복사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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