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이 편협 되어 있네요. 주사파가 변형된 카멜레온처럼 역겹습니다. 한국의 현실에 답답함은 이해하지만 철저하게 약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좋을텐 데… 자꾸 김정일이가 하는 얘기로 해석되어 들리니… 저도 참 딱하네요. 죄송해요 이런 얘기…”
지난 편지 <촛불로 노무현 정권을 바로 잡을까?>에 한 독자가 보내온 답장, 전문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잃었습니까? 솔직히 말하지요.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대체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시위와 주사파가 어떤 관계일까요? ‘김정일이가 하는 얘기’란 또 무엇일까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런 의혹은 비단 편지를 주신 독자만의 사고에 그치지 않습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참여해서일까요? 사고의 단순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서울대총학생회는 뜬금없이 이미 탈퇴한 한총련에서 탈퇴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수구신문이 이를 부각해 보도한 것은 물론이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황당한 일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김동민 공동대표 글입니다. 그는 수구신문과 달리 평택 대추리의 진실을 보도하려고 노력한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매체”들이 균형을 잃었고 구태의연한 보도를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게다가 시민언론운동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노무현 정권의 홍보매체에 문제의 글을 기고했습니다.
민언련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일자 김 대표는 사과의 글을 민언련 게시판에 올리며 “진보매체 종사자들과 우리 회원들에게 상처가 된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딱한 일입니다. 그는 여전히 상황을 잘못 읽고 있습니다.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매체’ 종사자들이 김 대표의 황당한 글에 ‘상처’받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쩌다가 민언련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김 대표는 문제의 기고문에서 “시위대의 전위역할을 하는 한총련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직된 자세로 구태의연한 투쟁방식을 고집함으로써 (학생)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역사의 유물로 전락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한겨레는 한총련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그렇습니다. 단순히 안타까울 일만은 아닙니다. 김 대표가 안티조선운동을 하면서 결국 <조선일보>를 닮아간 걸까요? 도대체 <한겨레>의 평택 대추리 보도를 비난하면서 ‘한총련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왜 나오는 걸까요?
<조선일보>를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5월15일자 사설(반미·좌파세력의 ‘평택 속셈’ 국민은 바로 봐야)에서 평택집회를 “반미 이념투쟁의 불쏘시개” 따위의 천박한 말투로 덧칠했습니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8일자 사설(군과 검·경, 국기 수호의 시험대에 섰다)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를 겨냥해 다음과 같이 살천스레 규정했습니다.
“범대위는 국가안보와 경제 및 외교의 국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군 철수’를 꾀하는 친(親)김정일 세력임이 분명해졌다.”
그래서가 아닐까요? 제게 편지를 보낸 독자가 ‘김정일 얘기’라고 단정하는 까닭은. 여기서 묻고 싶습니다. 민언련 김동민 공동대표의 사고는 거기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 걸까요?
명토박아 둡니다. 평택에 최첨단 미군기지가 건설되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념’은, 서울 광화문에서 날마다 촛불로 공화국의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의 생각은, 결코 ‘반미-좌파’나 ‘주사파’가 아닙니다. 이 땅의 평화입니다.
저는 김동민 공동대표가, 그리고 민언련이, 잘 못 가고 있는 길을 바로 잡을 성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습니다. 1984년 세워진 민언련은 오랜 전통을 지녀온 언론운동단체입니다. 김 대표가 더는 민언련에, 그리고 최민희 상임대표에, 부담을 줄 때가 아닙니다. 민언련이 살아있음을 보여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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