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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필진] 조선왕조실록의 ‘환수’ 아닌 ‘환수’

등록 2006-06-05 14:26

1913년에 일본 도쿄대학교로 넘어가서 93년 동안 타국의 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권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돌아온다. 5월 31일의 서울대학교와 도쿄대학교 '오대산 사고본 47권 환수 공동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의 서울대학교 환수가 결정되었고, 이제는 조국으로의 귀환만을 앞두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간 이 문제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해서 어제서야 조선왕조실록 환수에 대한 소식을 MBC 느낌표 '위대한유산 74434'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분명히 '환수' 자체는 대한민국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사건이라고 평가하지만 그 과정을 놓고 보면 아쉬움이 들었다.이번 환수가 진정 '환수'인지 의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반환'형식이 아닌 '기증'형식으로 환수되었기 때문이다.

약탈된 문화재를 환수받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면, 그것은 '약탈 국가의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기본적인 자세 없이 그저 '학술교류'라는 미명하에 '일본측 기증, 한국측 환수'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뤄진 이번 환수조치에는 도쿄대학교의 반성과 사죄의 태도가 없는, 그저 '기만적인 술책'으로 문제를 타개하려고 한 행태를 엿볼 수 있다. 그에 대한 서울대학교의 대처방안은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도쿄대학교의 '학술교류 차원에서의 기증'이라는 일국 기만적인 제안에 대해,서울대학교는 그저 '적극 수용'이라는 한마디로 도쿄대학교의 술책에 협력하고 말았다. 과연 그것이 서울대학교의 오판에서 비롯된 일인지, 그렇지 않다면 서울대학교의 의도된 반역사적 행위였는지는 추후에 판단할 사항이라고는 하나, 서울대학교에서 환수받게 된 과정 자체가 그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양국의 입장 차이를 반영한 결정'이라는 식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으나, 문화재 환수의 과정에서 '입장 차이'를 고려한 서울대학교의 결정을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한 '양국의 입장 차이'를 고려하고 반영하기 전에, '과거사 청산'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기치를 무시하면서까지 환수를 받으려고 한 서울대학교의 진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저 학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개교 60주년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에 팔려서 전국민의 숙원이었던 조선왕조실록의 환수를 그 과정하에서 역사적 의의를 훼손한 서울대학교의 이번 결정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선왕조실록 환수가 한일협정의 재판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하고 있다. '친일파' 박정희 대통령과 그 정권이 획책한 한일협정은 '독립 축하금'이라는 미명하에 그간 일본이 저질러왔던 온갖 만행을 은폐했고, 40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실상이 전국에 상세하게 밝혀졌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정녕 한일협정에서의 실수를 깨닫지 못했는가? 만약 그것을 알고도 그러한 실수를 다시 행했다면, 그것은 서울대학교의 반역사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미 서울대학교가 그 전신을 경성제국대학교로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어쩌면 이는 서울대학교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곧이곧대로 드러낸 행위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며 현재 서울대학교가 대한민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감안한다면 서울대학교의 결정은 호되게 비난받아야 하고 또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의 문화재 반환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 것인가?서울대학교의 비합리적인 결정은 이번 사태를 끝으로 막을 내려야 할 것이며, 이후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외규장각 도서들에 대한 반환논의에서는 프랑스의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를 반드시 받아내는 조건하에 문화재 반환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일전에 고 미테랑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떼제베를 판매하면서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반환을 약속한 선례가 있다고 들어 알고 있다. 물론 프랑스 현지에서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쪽에서 내세우는 반론은 '이제는 어쩔 수 없다.'거나, '문화는 당신들의 독점물이 아니다.'라는 이유이다. 그에 대해서 홍세화 씨도 프랑스 인들의 심정을 지지한 글을 쓰면서 대한민국 문화인식의 현 실태를 비판한 바 있으나, 이것은 그와는 별개의 문제에서 해석해야 한다.


문화를 이루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민족', 그리고 그 민족의 '역사'이다. 이러한 주장이 극렬 민족주의로 흐를 수도 있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이전에 역사적인 관점으로 분석해 보자면 문화는 '역사'의 주무대와 함께해야 한다.' 역사'가 있는 곳에서 그 문화는 최고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 혹시 느끼지 못하였는가? 대한민국의 박물관에 그리스의 투구가 전시되어 있던 KBS '스펀지'의 그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보면서 뭔가 이질감이 들지 않던가? 그렇다. 그리스의 문화유산은 그리스의 역사, '그리스'라는 무대에 있을 때에야 최고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대한 논의도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지 않을까. '문화'는 역사의 주무대에, '역사'가 있는 곳에 존재한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오벨리스크가 화려함은 커녕 이질감만을 가져오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다면, '문화'를 '역사'와 함께하게 하는 것에 조금은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어차피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약탈 문화재들을 모두 반환한다고 루브르 박물관이 텅 비는 것도 아닐 것이며, 어쩌면 그로 인해 루브르 박물관이 진정한 가치를 다시 찾게 될 지도 모른다. '역사'의 주무대와 함께하는 '문화'야 말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가치를 자랑할 것이다.

이번 조선왕조실록 환수에서 일어난 과정에서의 여러가지 오류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교훈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 없이, 그저 '기만과 권모술수'의 어두움으로 가득찬 문화재 환수에 대해서는 당당히 거부를 외치고 처음부터 다시 상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비록 '환수'가 결정된 조선왕조실록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가들이 이러한 기본적인 태도를 가지고 문화재 반환 협상에 임해줬으면 한다.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그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할 뿐이며, 그런 현상이 반복될 수록 문화재 반환의 역사적인 의의는 계속적으로 훼손될 것이다. 문화재 반환의 진정한 역사적 의의를 고이 간직하고 싶다면 역사가들, 그리고 반환을 받는 주체인 정부와 이외 학술기관의 마음가짐부터가 제대로 되어야 할 것이다.

'환수' 아닌 '환수'가 되어버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권의 환수.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서 미래에는 반드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있음으로 인해 '문화재 환수'의 진정한 가치는 빛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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